나는 화동조선족 주말학교의 평범한 교사다. 이제는 당당하게 그리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이 이름 앞에 나는 꽤 오래동안 머뭇거렸다. 단풍잎이 곱게 떨어지던 어느 주말, 나는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언덕길을 걸으면서 주말학교와의 인연을 다시 돌이켜보았다.
주말학교와의 인연
하루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3년전 나는 겁도 없이 주말학교 교사를 맡게 되였다. 내가 보조교사로 있던 학군의 담임교사가 개인 사정으로 그만두게 되면서 나에게 한번 담임을 맡아보라고 권유하셨다. “내가 잘 할수 있을가?”라는 우려도 없지는 않았지만 어려서부터 동경해왔던 교육사업에 대한 열망이 있었던지라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되여 나는 겁도 없이 이 ‘험난한’ 길에 들어섰다. 그 무식한 용기의 밑천이라 해봤자 2학기 동안 보조교사를 맡으며 어깨 너머로 배웠던 것들과 나 자신이 한 아이의 엄마라는 게 전부였다. 아이들에 대한 모성의 사랑과 교육사업에 대한 열정만 있다면 못해낼 것도 없다는 단순한 판단이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처음으로 아이들 앞에 담임교사의 명분으로 서게 됐던 날은 개학 첫날이였다. 한없이 들떠있는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면 설렜는데 개학식이라 뒤에 빼곡히 서서 청강하는 학부모님들의 시선은 마주치기도 무섭게 부담스러웠다. 전임 교사가 원래 경험이 많은 훌륭한 교사였던지라 비교가 될 게 뻔했다. 몇날 며칠 준비를 했는데도 머리속은 새하얗고 입술은 굳어져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심장은 당장 튀여나올 것 같이 요동을 쳤다. 나는 그 날의 긴장감을 아마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첫 수업을 어떻게 마쳤는지도 모르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그 심경은 한마디로 ‘후회’였다. 무슨 배짱으로 잘하지도 못할 걸 맡아버렸는지 후회막급이였다. 시큰둥해 하는 아이들의 표정과 실망하는 부모님들의 눈빛이 환각처럼 눈앞에 어른거렸다. 아이들이 교사를 잘못 만나서 우리글에 대한 취미를 잃어가면 어떡하지, 나때문에 우리말 공부의 끈을 놓아버리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과 자괴감이 밀물처럼 밀려들어 나를 괴롭혔다. 그렇다고 이미 개학이 시작된 시점에서 못하겠다고 나앉을 수도 없었다. 머리가 아프고 마음이 너무 힘들어 미칠 것 같았다.
예상대로 아이들은 하나 둘씩 내가 맡은 반에서 떨어져나갔다. “다른 흥취반이 많아서 아무래도 시간을 맞추기 힘드네요.” 혹은 “사정 때문에 이번 학기까지만 할게요”라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힘이 쫙 빠졌다. “역시 내가 잘 못 가르쳐서야.”라는 자책감이 점점 더 크게 나를 옥죄였다. “제가 잘 가르칠테니 한학기만 더 견지해보세요.”라는 말이 입가에 맴돌았지만 용기가 없어 결국 입도 뻥긋 못하고 아이들을 하나씩 떠나보냈다.
그럴수록 남은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수업준비를 철저히 했다. 정말이지 회사일보다 주말학교 수업 준비에 더 열성을 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에 대한 압박감은 날로 더해져서 수업이 있는 전날에는 꿈 속에서까지 수업시간에 쩔쩔 매는 꿈을 꾸군 했다. 꿈에서 깨서는 “하다보면 잘할 수 있을 거야. 너무 자신한테 압력 주지 마. 느긋하게”라고 주문을 외우면서 스스로를 다독거리고 격려하며 다시 용기를 내어 아이들 앞에 섰다. 그러나 준비한 내용을 다 소화하지 못했거나 혹은 수업 효과가 별로인 날은 또다시 자괴감으로 밤잠을 설치며 수업과정을 꼼꼼히 되짚어봤다.
심적으로 너무 힘든 시간들이였지만 당장 물러설 수 있는 상황 또한 아니였던지라 주변의 동료 교사들한테도 자문을 구하며 이를 악물고 한발 한발씩 앞으로 내디뎠다. 그리고 교사들과의 소통을 통해 서로가 비슷한 고민들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였다. 주말학교의 특성상, 교학은 기본이고 학생 모집에서 크고 작은 행사까지 교사가 학부모님들과 소통하며 일당백으로 소화해내야 하는 시스템이라 강의에 자신있는 교사들이라고 해도 다른 고민이 많았던 것이다. 거기다 교사들 대부분이 직장인이였고 자식을 둔 엄마였기에 가정과 주말학교의 균형을 잡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라는 그 동질감이 이상하게 큰 위로가 되였고 동료들끼리의 격려가 힘이 되였다. 나는 주말학교에서 조직하는 ‘교사연수회’나 ‘월례회의’ 등 배울 수 있는 기회는 놓치지 않고 빠짐없이 참가하면서 경험을 전수받으며 조금씩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나갔다.
방학간 읽기 공부, 좌절을 딛고
2018년 년말의 학기말 총결모임의 날을 잊지 못한다. 그 학기를 마감으로 경험있는 교사 3명이 한꺼번에 주말학교를 떠나게 되였던지라 학기 총결모임은 결국 송별회로 흘렀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주말학교를 떠나는 선생님들의 작별인사에는 아쉬움이 묻어있었다. 나는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정 들었던 아이들을 떠나는 서운함과 함께 뭔가 다 쏟아붓지 못한 아쉬움… 그 마음들이 내게 전해져서 울컥해졌다. 그만두고 싶은 생각을 한두번 해봤던 게 아니였던지라 지금 내가 학교를 떠나면 어떤 심정일지 감정이입이 되면서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터져버렸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 내 입에서 튀여나왔다. “저는 제 손에서 반급이 없어질가봐 제일 걱정이에요.” 한명두명 떨어져나가는 아이들 때문에 로심초사하던 시절이였던 것이다.
나의 절실함이 전해졌던가 보다. 모임이 다 끝나도록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나에게 한 선배교사님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선배는 내 손을 꼭 잡아주시면서 자신이 시도해봤던 일명 '무조건 읽히기 프로젝트' 경험을 상세하게 전수해 주셨다. 즉 아이들의 수준에 맞는 그림책을 선정하여 아이들 수준에 맞게 매일 한두페지씩 읽게 하고 위챗음성으로 받아서 검사하는 것인데 성공여부는 ‘매일매일의 견지’에 달려있다고 하셨다. 그래, ‘견지’가 비결이라면 나도 충분히 시도해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선배교사가 맡았던 반급이랑 내가 맡은 반급이 년령대도 수준도 비슷하였던 지라 나는 그 경험을 바로 실천에 옮겨봤다.
아이들의 수준에 맞는 이야기책을 선정하고 아이들의 선의의 경쟁을 격려하기 위해 예쁜 칭찬스티커판도 준비하였다. 학부모들의 많은 협력과 성원이 필요한 일이라 나의 결심과 함께 부모님들께도 꼭 견지해주십사 각오를 요청하였다.
학부모들의 방학까지도 애들 챙겨줘서 고맙다며 적극 호응해주셨고 나도 한결 더 자신감을 가지게 되였다. 모든 것을 온라인으로 진행할수 밖에 없었지만 의외로 열정들이 높았다.
여름방학이라 고향의 조부모님 댁에 가있는 동안에도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숙제를 완성해서 보내왔다. 사정이 있어 제시간에 숙제를 못할 경우에는 꼭 늦게라도 보충해서 보내주셨다. 온라인으로 숙제 상황이 다 공유가 되니 아이들도 점점 승부욕을 보였다. 나는 아이들이 보내준 랑독 음성을 꼼꼼히 듣고 어떤 일이 있어도 바로바로 평가해주고 틀린 발음을 교정해주었다. 그렇게 한주일이 마감되던 날, 마지막 한명의 숙제까지 봐주고나니 조금은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첫 일주일을 스타트를 잘 뗐으니 이제 이대로 쭉 견지만 하면 되는거구나 싶어졌다. 퇴근길 뻐스를 기다리면서 나는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잘 따라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말과 함께 나의 감동을 음성메시지에 담아서 아이들에게 띄워보냈다. 아이들의 숙제 독촉 때문에 부모님들을 적잖게 닦달하고 괴롭혔지만 아이들의 진보가 놀랍다며 부모님들은 나의 열정에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그렇게 나는 여름방학 동안 동화책 2권을 완독한다는 목표를 거뜬히 완성하였다. 개학식 때 방학간 읽기 숙제 총화를 하며 나는 아이들에게 선물을 준비했고 부모님들과 함께 큰 박수로 아이들을 칭찬해주었다. 별이 무성한 칭찬 스티커판을 바라보며 아이들도 스스로가 해냈다는 성취감에 자랑스러워 하는 듯 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수고하신 부모님들께도 진심을 담아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역시 길은 발 밑에 있었다. 고민을 하니 방법이 생겼고, 열심히 하다보니 되는 것이였다. 뿌듯했고 보람찬 시간들이였다.
학부모님들과의 거리감을 줄이다
진심과 열정은 늦게라도 전해지는 법이다. 힘들었지만 최선을 다했던 로고가 아이들에게도 학부모님들께도 조금씩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사랑이 되고 격려가 되여 나한테 돌아오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교사절에 학부모님들이 나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수고하셨습니다”라는 그 한마디에 그동안의 로고가 다 잊혀지는 것 같았다. 교사로서의 희열이 바로 이런것이구나를 처음 느껴보던 그날, 꽃다발을 안고 교실문을 나서는 발걸음은 가볍고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어깨를 스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소리 높여 “저 교사입니다.”라고 꽃다발을 흔들며 큰소리로 자랑하고 싶어졌다. 온몸을 관통하던 그 기분좋은 짜릿함,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경험이 좀 쌓이자 나는 내가 소속된 학군(学区)의 다른 선생님들과 협력해서 적극적으로 방학식, 크리스마스 파티 등 애들이 좋아할 만한 행사를 조직했다. 행사 때마다 학부모님들은 자발적으로 일찍 와서 행사장 장식을 도와주셨고 간식도 듬뿍 챙겨오셨다. 역시 축제는 아이들을 즐겁게 했다. 웃고 떠들며 즐겁게 우리말로 다양한 놀이를 즐기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부모님들도 덩달아 즐거워하셨고 고마운 마음을 아낌없이 나한테 전해줬다. “열심히 해줘서 감사합니다”, “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따뜻한 목소리로 전해주는 한마디한마다가 내게는 행복한 전률이 되였고 또다시 내 열정에 불을 지펴주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단체 톡방에서의 아낌없이 보내주시는 호응과 따뜻한 격려의 말씀들도 나에게는 큰 고무가 된다. 그 한줄한줄의 문자에서 나는 부모님들의 지지와 성원 그리고 신뢰를 느낀다. 이제 더 이상 부모님들과 눈이 마주치는 것이 두렵고 불편하지 않다. 그리고 아이들의 우리말을 지켜주기 위하여 주말 시간을 반납하면서 어떤 불편함도 기꺼이 감수하시며 협력해주시는 부모님들이 계서서 나는 한결 더 책임감을 느끼는 동시에 자신감도 얻는다. 그래, 아이와 부모와 교사가 각자 선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못해낼 것이 뭐가 있으랴!
나에게 주말학교란
누가 나에게 "당신에게 주말학교란 무엇인가?"라고 물어보면 나는 아마 "새콤달콤하기도 하고 짜릿하기도 한 첫사랑과 같은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 첫사랑에 푹 빠져서 내 모든 걸 후회없이 쏟아붓고 싶다. 어쩌면 그 과정에 가끔은 서운함과 오해도 있을 수 있고 또 가끔은 서로 상처 주고 뒤틀릴 때도 있겠지만 사랑은 원래 아파야 제맛이니 그 모든 것을 기꺼이 감수하고 싶다. 그리고 그 진실된 감정을 소중한 추억으로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다.
그리고 더욱 소중한 것은 주말학교를 통한 만남이다. 나는 주말학교를 통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만났고 부족한 부분이 많음에도 기다려주고 응원해주시는 멋진 학부모님들을 만났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함께 고민해주고 격려해주는 동료교사들을 만났다. 그 만남들에 새삼 감사하다. 이런 좋은 만남들 때문에 나는 좋은 기운을 받고 한뼘 더 성장을 해가는 것이 아닐가? 그들과 함께라면 나는 왠지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 같고, 앞으로도 더 멋진 성장을 할수 있을 것 같아 벅차진다.
이 삭막한 환경에서 우리 말과 글을 지켜내기 위해 거의 몸부림을 치다싶이 하는 사람들, 나는 내가 그들중의 일원이라는게 자랑스럽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도 주말학교 교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주말학교 교사이다.
(2020-07-03)
◎글쓴이 소개
류국화, 2004년 룡정고중 졸업. 2008년 산동대학 약학부 졸업. 현재 상해 모 의약회사에서 데이터관리 매니저로 근무하고 있음. 주말에는 화동조선족 주말학교 담임교사로 봉사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