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을 일컫는 이름은 여러 가지이다. 세종이 한글을 만들 당시에는 ‘훈민정음’이라 불렀는데, 이는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다.
이 때의 소리는 글자와 통한다. ‘바른’이라는 꾸밈말을 붙인 이유는, 한자를 빌려 쓰는 것과 같은 구차한 것이 아니라, 우리말을 제대로 적을 수 있는 글자라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훈민정음≫은 바로 이 이름을 쓴 책이고, 그 밖의 여러 문헌에도 이 이름은 많이 나타나고 있다. ‘훈민정음’을 줄여 ‘정음’이라고도 하였는데, 이 이름은 훈민정음 해례의 끝에 있는 정인지의 글에 이미 나타나 있다.
‘언문(諺文)’이라는 이름은 최근까지 쓰였는데, 이것은 그 유래가 오래된 말이다. 원래 ‘언’이란 ‘우리말’ 또는 ‘정음’을 가리키는 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훈민정음 해례에 보면, “문(文)과 언(諺)을 섞어 쓸 때는……” 또는 “첫소리(초성)의 ㆆ과 ㅇ은 서로 비슷하여 언에서는 가히 통용될 수 있다. ”라고 하였고, “반혓소리 ㄹ은 마땅히 언에 쓸 것이지 문에는 쓸 수 없다. ”고 하였는데, 여기서‘언’은 우리글·우리말의 뜻으로 쓰인 것이다.
그리하여 ≪세종실록≫에는 언문청(諺文廳)이라는 말이 나오고(28년 11월조), 또 바로 ‘언문’이라는 말도 나타난다(25년 12월조). 또, 그 뒤로는 ‘언서(諺書)’라고도 하였으니, 이것은 한문을 ‘진서(眞書)’라 한 데 대립시킨 말이다.
최세진(崔世珍)의 ≪훈몽자회 訓蒙字會≫에서는 ‘반절(反切)’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는데, 중국 음운학의 반절법에서 초·중·종성을 따로 분리하는 방법을 쓰기 때문에, 정음이 초ㆍ중ㆍ종성을 분리하여 표기하는 점에서 이와 비슷하다고 보아 붙인 이름인 듯하다.
‘암클’이라는 이름도 쓰였으니, 이는 부녀자들이나 쓰는 글이라는 뜻이다. 선비가 쓸 만한 글은 되지 못한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1908년 주시경(周時經)을 중심으로 ‘국어연구학회’가 만들어졌으나, 일제의 탄압에 못 이겨 바로 ‘배달말글몯음’으로 이름을 고친 후, 1913년 4월에는 다시 그 이름을 ‘한글모’로 고쳤다.
이 때부터 ‘한글’이라는 이름이 쓰이기 시작한 듯하며, 널리 쓰이게 된 것은 1927년 한글사에서 펴낸 ≪한글≫(7인의 동인지)이라는 잡지에서부터이다.
‘한글’의 ‘한’은 ‘하나’ 또는 ‘큰’의 뜻이니, 우리글을 ‘언문’이라 낮추어 부른 데 대하여, 훌륭한 우리말을 적는 글자라는 뜻으로 권위를 세워 준 이름이다. 이는 세종이 ‘정음’이라 부른 정신과 통한다 할 것이다.
정음을 만들던 당시에 한글 낱 글자들을 무엇이라 불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지금 부르는 ‘기역, 니은, ……’등의 이름이 문헌에 처음 나타난 것은 16세기에 나온 최세진의 ≪훈몽자회≫에서이다.
최세진은 ‘ㆆ’을 없애고 나머지 27자를 ① 첫소리에만 쓰이는 8글자, ② 첫소리·끝소리에 두루 쓰이는 8글자, ③ 가운뎃소리에만 쓰이는 11글자로 나누고, ②와 ③ 에 대해서는 지금과 같은 이름을 붙이고 ①에 대해서는 ‘ㅈ(지), ㅊ(치), ㅎ(히)……’와 같이 한 음절 이름을 붙였다. 첫소리로만 쓰이므로 첫소리로 쓰인 예만 보인 것이다.
1933년 조선어학회(한글학회)에서<한글맞춤법통일안>을 내면서 모든 닿소리 글자는 받침으로 쓸 수 있음을 밝힘과 동시에 ①도 ②처럼 두 음절의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28글자 가운데 지금 쓰이지 않는 ‘ㆆ, ㅿ, ·()’의 이름은 지어지지 않았고, ‘ㅇ’과 ‘ㆁ’의 구별이 없어짐에 따라 그 이름도 하나로 통일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