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1): 목차, 정의, 요약문, 개설

한글(1): 목차, 정의, 요약문, 개설

운영자 1 796 2023.01.09 23:4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글



목차

 

정의 3

요약문 3

개설 3

훈민정음 4

 1.본문 4

 2.첫소리 글자를 만든 원리 5

 3.가운뎃소리 글자를 만든 원리 7

 4.모아쓰기 8

 5.소리의 높낮이 8

 6.글자와 소리의 형이상학 8

한글에 대한 이름 9

 1.한글 글자의 이름 10

한글 창제의 역사적 의의 10

 1.반포 11

 2.한글날 12

 3.세종조 어문 정책과의 관계 12

 4.훈민정음 기원설(訓民正音起源說 )14

 5.제자원리(制字原理) 16

훈민 정책과 훈민정음 18

국문 문학의 발전 과정 21

훈민정음의 의의와 활용 25

근대 이후 어문 생활에서의 기능 29

 1.갑오개혁~대한제국시대의 국문 사용 29

 2.일제강점기의 국문 사용과 수난 32

 3.광복 후의 국문사용 35

한글 인쇄 활자의 기계화 문제 39

 1.발달 39

 2.한글의 기계화ㆍ전산화 40

 3.한글 자체의 변화 42

 4.한글의 전산화 45

   4.1.한글 코드 45

   4.2.한글 입력 46

   4.3.한글 문서처리기  47

   4.4.한글 글꼴(font) 47

   4.5.한글 운영체계 48

   4.6.한글 정보 처리 48

참고문헌 48

 

정의

조선전기 4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창제하여 반포한 우리나라 고유의 문자.

요약문

한글은 조선전기 4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창제하여 반포한 우리나라 고유의 문자이다. 어려운 한자를 빌려 문자로 사용할 경우 민족의 정서는 물론이고 정확한 정보 기록과 소통 자체가 불가능하다. 또 일반 민중은 말 이외에 의사를 기록하고 전달할 방법이 없게 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한글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한글은 발성기관의 모양을 본뜬 자음과, 천지인의 모양을 본뜬 모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과학적인 음운학 연구를 토대로 누구나 습득할 수 있도록 만든 문자로, 세계역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독창적인 문자이다.

개설

세종은 일반 민중이 글자 없이 생활하면서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음을 마음 아프게 여겼다. 그들 민중은 관청에 호소하려 해도 호소할 길이 없었고, 억울한 재판을 받아도 바로잡아 주기를 요구할 도리가 없었으며, 편지를 쓰려고 해도 그 어려운 한문을 배울 수가 없었다. 또한, 농사일에 관한 간단한 기록도 할 방법이 없었다.

세종은 백성들의 이러한 딱한 사정을 매우 안타깝게 여겼던 성군으로, 주체성 강한 혁신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한문은 남의 글이므로 한자를 빌려 우리말을 적더라도 매우 어색하여 뜻을 제대로 전할 수가 없었다.

밖의 다른 나라 글자들은 도저히 빌려 만한 것이 못된다고 생각하였다. 한편 당시의 상황은 새 글자를 만들어 낼 만한 여러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첫째, 고려 말기 몽고에게 당한 곤욕으로, 그리고 원나라와 명나라의 갈음 시기에 즈음하여, 나라 안에서는 자아 의식이 강해지기 시작하였다.

둘째, 주위의 민족들은 저마다 자기 나라의 글자를 가지고 있었으나 우리는 한자를 빌려 썼는데, 그것으로 우리말을 적는 것은 여간 어색한 일이 아니었다.

정인지의 표현을 빌리면, 한자로 우리말을 표기하는 방법이었던 이두글[吏讀文]은 “막혀 잘 통하지 않고, 비단 품위가 없고 체계가 없어 상고할 길이 없을 뿐 아니라, 말을 적는 데 있어서는 만에 하나도 제대로 전달하지를 못한다(或澁或窒 非但鄙陋無稽而已 至於言語之間 則不能達其萬一焉).(훈민정음 해례) ”고 하였다. 이처럼 일반 백성의 글자 생활은 극도로 빈곤 상태에 있었다.

셋째, 세종의 개인적인 역량은 새 글자를 만드는 데 크게 작용하였다. 왕은 학문을 좋아하여 성군으로서의 도리를 깊이 체득하였고, 외국 세력에 대하여 우리를 지키려는 주체성이 강했으며,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려는 민본 정신이 투철했던데다 혁신적인 정책을 수행해 나가는 과감한 성격을 겸비하고 있었다.

넷째, 집현전에는 세종의 이러한 정책을 도울 만한 많은 학자들이 모여 있었다.

다섯째, 중국과의 외교 관계를 원만히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는 중국말의 통역을 길러야 했는데, 그들을 과학적으로 교육시키기 위해서는 중국말의 소리를 체계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따라 중국 운학을 연구하게 되었는데, 이 운학의 체계는 새 글자를 만들어 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443년(세종 25) 음력 12월 세종은 ‘훈민정음’이라는 새 글자를 만들어 냈는데(세종실록과 훈민정음해례의 끝에 실린 정인지의 꼬리글에 따름), 이러한 독창적인 글자를 만든 일은 세계 역사에 일찍이 찾아볼 수 없었다.

댓글

운영자 2023.01.10 00:57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실린 <한글>이 한글을 이해함에 아주 좋다고 생각되어 12회에 나누어 여기에 소개한다. 
출처: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61508#cm_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