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과 족(族),족(族)과 민족(民族),그리고 조선족

    PROFESSOR COLUMN교수칼럼

인(人)과 족(族),족(族)과 민족(民族),그리고 조선족

0 1,792 2020.04.08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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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의 현황과 향후 전망에 대한 토론이 가끔 적지않은 사람들의 주목을 끈다. 엄숙한 토론은 별로 없고 그냥 소일거리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심도 있게 연구하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다. 나도 여기서 생각나는 대로 몇 마디 하려 한다.  


1. 인(人)과 족(族)

중국어에서는 워낙 인(人)과 족(族)을 구분하지 않았다. 《毛泽东选集》(合订一卷本) 585쪽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我们中国现在拥有四亿五千万人口,差不多占了全世界人口的四分之一。在这四亿五千万人口中,十分之九以上为汉人。此外,还有蒙人、回人、藏人、维吾尔人、苗人、彝人、僮人、仲家人、朝鲜人等,共有数十种少数民族,……


여기서 모택동은 1939년 당시 인(人)을 족(族)과 같은 의미에서 사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에서는 장족이나 회족을 가리킬 때 장민(藏民), 회민(回民)이란 단어을 사용하기도 한다. 예하면 상하이에 있는 회족중학교는 회민중학(回民中學)이라 한다. 상해시급 중점 학교다.


현재 민족을 가리킬 때 공식적으로는 족(族)을 인(人)으로 쓰지 않는다고 하지만 일상 생활에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쓴다. 사실상 그 어떤 경우에도 중국 조선족, 조선의 조선인, 한국의 한국인 등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명칭만으로는 부족하여 추가 설명이 필요하게 된다.

  

2. 족(族)과 민족(民族)

중국에는 56개 ‘민족’이 있다고 말한다. 이 56개 민족(民族)은 통상  56개 족(族)으로 호칭된다. 때문에 ‘족’과 ‘민족’을 엄격히 구분하느라 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한족(漢族)과 한민족(漢民族)을 구분하느라 하는 것이 의미가 없듯이 조선족(朝鮮族)과 조선민족(朝鮮民族)을 구분하느라 하는 것도 별로 의미가 없다. 


바이두(百度)에 들어가 ‘朝鲜’을 찾으면 다음과 같은 것을 볼 수 있다. 즉 조선의 주요 민족을 ‘조선족’이라 한다.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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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한(민)족’(‘漢(民)族’)의 구성원은 주로 중국에 있고, 그 외에는 동남아, 미국 등에 있다고 말할 수 있듯이 ‘조선(민)족’(한국에서는 한민족이라고 한다)의 구성원은 주로 한반도 남과 북에 있고, 그 외에는 미국, 중국, 일본 등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조선족’ 개념은 중국 조선족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족(族)과 민족(民族)을 엄격히 구분하느라 하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다. 중국 조선족 학자들을 제외한 중국 학자들이 학문연구의 내적 필요성에 의해 족(族)과 민족(民族)을 구분하느라 하는 논의는 별로 없는 것 같다. 


3. 영어 표기

위와 같은 과민 반응은 ‘조선족’의 영어 표기가 자꾸 거론되는 데서도 나타난다. 1978년에 편찬되어 1980년에 출판된 《汉英词典》(北京:商务印书馆,1980年)에서는 [朝鲜族]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the Chaoxian(Korean) nationality, distributed over JIlin, Heilongjiang and Liaoning

(2)The Korean people(of Korea) 


40년 전에 이미 이러한 표기들이 있었다. 여기서도 ‘족’과 ‘민족’의 구분은 의미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 ‘Chaoxian’이란 개념을 조선족의 영어 표기에 넣는 것은 신중한 고려가 필요되는바 Chaoxian과 Korea의 이해 차이로 인한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 수도 있다. 혹시 남북통일 후 국호를 한국어로 ‘조선민국’이라 한다 하여도 영어로는 결코 Republic of Chaoxian이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Chaoxian은 Korea, Chosun, Josun 중의 하나로 대체될 것이다.


일상에서 중국 조선족을 영어로 표기할 때 Korean Chinese가 적합하다. 이 영어 단어는 한국계 중국인, 조선계 중국인, 또는 중국 국적의 조선족, 중국 국적의 한인(韓人) 등으로 이해될 수 있는바, 즉 민족은 조선족(혹은 韓族), 국적은 중국이란 뜻이므로 ‘중국 조선족’이라 번역함이 가장 적합하다. 예를 들면, 중국 조선족 엘리트들이 가장 많이 집중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 중국조선족과학기술자협회는 영어로는 The Korean-Chinese Scientists and Engineers Association이라 한다. 


중국 조선족을 ‘Chinese Korean’이라 하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번역이다. 이는 영어에서 ‘중국계 한국인’, 즉 중국인 혈통으로서 한국 국적인 사람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Korean American이라 써놓고 미국인을 포함한 영어 국가 국민들로 하여금 ‘한국계 미국인’이 아니라 ‘한국적(韓國籍) 미국인’이라 이해하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4. 1945년 광복 시의 재중 조선인(한인) 

1945년 8월 광복이 될 때 중국에는 조선인(한인)이 약 216만 명 있었는데 광복이 되면서 이들은 3분화되었다. 약 60만 명은 북한으로 귀환하고, 42만 명은 남한으로 귀환하였으며, 나머지는 중국에 남았는데 1953년 중국 조선족 인구는 112만 명이었다. 그리고 중국 내에는 소수의 북한 국적의 ‘조교’가 있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광복 전에 재중 조선인(한인) 중 일부는 이미 중국 국적을 취득하였다는 것이다. 현재의 용어로 말한다면 당시 그들은 이미 중국 조선족이 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5. 개혁개방 후 중국 조선족의 향방 

개혁개방이 추진되면서 중국 조선족 사회에는 새로운 3분화가 발생하고 있다. 이 새로운 3분화는 1945년 광복 당시의 3분화와 크게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1) 한국 및 일본, 미국 등 외국으로 약 80만 명이 진출, 그 중 일부는 이런 국가들에서 국적이나 영주권을 취득하였다. (정확한 숫자는 얼마일까?)


2) 북경, 청도, 상해, 광주 등 중국 내 연해 도시 및 그 주변을 중심으로 전국 31개 성ㆍ시ㆍ자치구로 퍼지어 그 중 일부는 호적도 옮겼다.(정확한 숫자는 얼마일까?) 


3) 중국 조선족의 소수가 계속 연변조선족자치주와 장백조선족자치현 등 조선족 집거구(조선족 자치지역) 내에 거주하고 있다. 이런 집거구 내에서도 조선족 인구는 이민족보다 훨씬 적다. (정확한 숫자는 얼마일까?) 


6. 조선족 민족정체성의 변모

중국의 다른 소수민족과 마찬가지로 중국 조선족의 정체성은 2중성을 띠고 있다. 즉 중국 국민으로서 다른 중국인들과 동질성이 있고, 조선민족으로서 고유의 문화와 언어 등을 보유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다른 민족과 이질성(특수성)이 있다. 조선족이 이민족에게 동화된다는 것은 이러한 이질성(특수성)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현재 조선족은 전체적으로, 특히 집거구를 떠난 조선족은 이민족으로의 동화가 서서히 또는 급속히 추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래는 산재지역 조선족의 일반 상황이다.


1) 공동의 삶터가 없다. 산재지역 조선족인들이 새로운 집거구를 구축한다는 것은 중국의 인구구조, 조선족의 경제력 등을 보면 가능하지 않다. 예를 들면 2010년 상해시 조선족 인구는 22257명으로 상해시 총인구의 0.1%도 안된다. 그들이 서울시 면적의 10배도 넘는 상해시에서 집거지를 구축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2) 공동의 경제기초가 없다. 개혁개방 후 조선족 기업인들이 우후죽순처럼 성장하고 있지만 그들이 소유ㆍ운영하는 기업을 조선족 기업이라 할 수 있는가는 쉽게 답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런 기업 내에  조선족인은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3)민족언어와 전통문화가 점차 소원화되고 있다. 고유언어와 전통문화는 산재지역 조선족이 조선족으로 가장 오랫동안 버틸 수 있는 내용물이다. 그러나 현실은 여기서도 이미 가시적인 변화가 일고 있음을 보여준다.


(1)조선족 사회의 공통어가 조선어로부터 중국어(한어)로 전환하고 있다. 공식적 혹은 비공식적 조선족 모임에서 사용 언어가 조선어로부터 중국어(한어)로 전환하였거나 전환하고 있다. 각종 조선족 ‘췬’을 보면, 소수의 조선족 문화 ‘췬’이나 조선어 교육 ‘췬’을 제외한 대다수 ‘췬’은 사용 언어가 중국어이다. 또는 주로 중국어를 사용한다. 


(2) 절대다수 어린이들이 우리말글을 모른다. 화동조선족주말학교 신입생은 90% 이상이 입학 시 우리말글을 전혀 모른다. 심지어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대학에 입학한 조선족 학생들 중 조선어를 모르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3) 조선족 가족 공통어가 중국어로 바뀌고 있다. 상하이 지역에서 부부 쌍방이 조선족일 경우 약 50% 가족의 공통어는 중국어이고, 급속히 증가하는 다문화 가정의 경우 거의 전부가 중국어를 가족 공통어로 하고 있다. 


(4) 민족 전통문화의 많은 내용이 이미 조선족 가정의 일상 생활에서 생략되어 있다. 중국 조선족 전통문화는 ‘문화대혁명’ 시기에 큰 타격을 받았었는데 개혁개방 후 인구 분산화가 추진되면서 만경창파에 일엽편주와 같은 조선족 가정에서 이는 별로 이상한 현상이 아니다. 


4)이민족과의 통혼으로 다문화 가정이 급증하여 중국 조선족의 정체성이 혈통적 측면에서 개변되고 있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다문화 가정에서 자녀들의 이민족화가 가속화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한국 내에서의 국제결혼은 이민족의 한국인화에 기여하지만 중국 내에서의 이민족과의 결혼은 조선족의 이민족화에 기여하게 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다문화 가정 학부모들 중 자녀들에게 우리말글과 전통문화를 가르치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이 아주 많은 것은 사실이다. 


5)민족 심리 또는 민족 의식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모든 민족은 민족 정체성의 내용으로서 고유의 민족 심리 또는 민족 의식을 갖고 있다. 이런 심리나 의식의 근저에는 민족 자부심이 숨어있다. 그러나 집거구를 떠나 중국 대도시로 이주하면서 중국 조선족 일부 구성원들은 경제력, 문화력과 사회지위 등에서 자기들이 예전에 갖고 있던 자부심이 일부 ‘맹목적’이었다고 생각하면서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따라서 자기가 조선족임을 지켜야 한다는 민족 심리나 민족 의식이 전례없이 약화되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한국인과 조선족 사이에 발생한 불미스러운 일들은 일부 조선족인의 민족 심리와 민족 의식을 크게 타격하였다. 


위의 모든 것은 산재지역 조선족은 급속히 자기의 언어와 문화를 잃어가고 있으며, 급속히 이민족에게 동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시에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산재지역 조선족인들 중 민족 정체성, 전통문화와 우리말글을 고수ㆍ전승하려는 노력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7. 중국 조선족 없어질까?

단군신화(기원전 2333년 단군이 고조선 건국)로부터 계산한다면 반만년 역사를, 문자로 기재된 시대(管仲이 지었다는 <管子>에 기록된 기원전 7세기의 사료)로부터 계산한다면 삼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조선민족은 인구 증감은 있겠지만 쉽사리 역사 무대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조선반도(한반도)에서는 물론이고 중국 대륙에서도 마찬가지다.


1) 역사의 회고

현재의 ‘조선민족’과 ‘한민족’은 동일한 대상에 대한 상이한 명칭이다. 현재의 조선민족(한민족)은 지난 수천년간 중국 동북지역과 한반도에서 명맥을 이어왔고 통일신라 시대에 한ㆍ예ㆍ맥의 통합을 이룩하였다. 


역사상 한반도 북부와 현재의 중국 동북지역에 수립된 고조선(이는 옛 조선에 대한 후세인들의 호칭, 당시에는 그냥 ‘조선’이었음, 기원전 108년 한나라에 의해 멸망됨.)과 고구려(전37-668)는 예맥의 나라, 발해(698-926)는 예맥ㆍ숙신의 나라였다. 고조선ㆍ고구려 시기에 예맥은 자기의 독자적 국가 정권을 보유하였었고, 발해 시기에 예맥은 숙신과 공동으로 국가 정권을 보유하였었다.


발해가 망한 후 예맥은 동북지역에서 국가정권 수립에는 실패, 지방정권 수립에는 성공한 적도 있었지만 결국 이민족에게 동화되고 말았다. 하지만 한반도에서 예맥은 삼한과 함께 통일신라인, 고려인을 구성, 오늘의 조선인(한국인)에 이르게 되었다.


동북지역에서도 우리민족의 명맥은 끊기지 않았다. 조선반도(한반도)의 조선민족(한민족) 구성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기들의 옛 삶터였던 동북지역에 진출하여 고조선인과 고구려인의 명맥을 이어왔다.  


▷요나라(907-1125) 시기,현 적봉시 동쪽에 삼한현(三韓縣) 설치,고려인 민호 약 5천.

▷금나라(1115-1234) 시기, 시조 함보가 신라/고려에서 옴, 위의 삼한현 존속.

▷원나라(1206-1368) 시기, 요동지역 ‘고려군민’ 관리에 국가기관 설치, 1308-1376년에 ‘심(양)왕’을 설치하여 요양-심양 지역 고려인을 관리.

▷명나라(1368-1644) 시기인 1436-1449년 요동도사 관할지역(현 요녕성 범위) 인구의 10분의 3이 고려인과 여진인. 명나라 시기에 영향력이 가장 큰 조선인 후예는 이성량(1526-1615), 그와 그의 아들들은 요동최고군사장관 요동총병(遼東最高軍事長官 遼東總兵)을 30여년간 맡았다.

▷청나라(1616-1912) 시기, 후금(1616-1636) 팔기군에 조선인 3000명, 1627년 정묘호란 시 조선인 5000명 피랍, 1636-1637년 병자호란 시 조선인 수만명 피랍.   

▷전쟁 포로나 전쟁 이민 외에 조선에서 명ㆍ청으로 넘어간 민간 이민도 많았으리라 추측됨. 이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현재 중국 조선족의 존재와 연변조선족자치주, 장백조선족자치현, 그리고 43개 조선족자치향(진)의 존재는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고찰할 수 있다. 현대 중국 조선족은 주로 19세기 중반 이후 조선반도에서 넘어온 조선인 및 그 후손들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고조선의 조선인과 삼한의 한인은 지난 수쳔년간 현재의 중국 동북지역과 한반도에서 명맥을 이어왔다. 중국 조선족은 앞으로도 명맥을 이어나가리라 생각된다. 인구의 구성이나 수량은 변화가 있겠지만 소멸되지는 않을 것이다. 


2) 중국 조선족 자치 지역

중국 조선족은 중화인민공화국 설립 후의 70여년간 자기의 고유언어와 전통문화를 전승 발전시킴에 있어서 미국, 일본, 러시아 등 세계상 그 어느 국가의 조선민족(한민족) 이민 사회도 비교가 안되는 거대한 성과를 취득하였다. 중국 조선족의 존재 양상은 우리민족 수천년 역사에서 그 선례를 찾아보기 힘든 기적이라 할 수 있다. 


(1) 중국 정부의 소수민족정책과 조선족자치지역 운영이 중국 조선족의 전례없는 발전을 가능케 하였다. 각 민족의 정치 평등을 보장하는 동시에 배급, 입시, 승진, 교육과 사회발전 등에서 한족은 향수할 수 없는 각종 특혜가 조선족에게 부여되었다. 특히 조선족자치지역이라는 조선족에 의한 지방정권의 설립과 운영, 그리고 조선족 학교의 설립과 운영은 중국 조선족의 존속과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해외에 나간 중국 조선족인들이 중국 정부의 소수민족정책을 칭찬하는 주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


(2) 조선족인들의 창조적인 노력과 각고분투는 정부가 마련한 정책과 제도가 조선족의 발전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하였다. 예를 들면 중국 조선족이 중국 56개 민족 중 평균 교육수준이 가장 높은 민족이 된 것은 동일한 체제 속에서 조선족이 꾸준히 노력한 결과임에 틀림없다. 중국 조선족은 중국의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많은 성과를 따내었고 많은 기여를 하였으며 우수한 인재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3) 인구유동을 제한하는 일부 정부 정책이 조선족 정체성의 보전과 조선족 사회의 안정 발전에 기여하였다. 개혁개방 전과 후를 비교한다면 개혁개방 전의 중국 사회는 계획경제체제 하에서 인구유동이 엄격히 통제되고 조선족 인구의 자유 이동도 불가능하여 조선족 개인의 자유와 발전은 어느 정도 제한되었었지만 민족 정체성과 사회 안정성은 잘 유지되었던 것이다. 


개혁개방 후 시장경제의 발전과 인구유동의 자유화는 수많은 조선족 개인과 조선족 사회의 발전에 획기적인 기여를 하였다. 하지만 조선족 인구 분산화가 급속히 추진되어 조선족자치지역 조선족 인구의 급감과 이민족 인구의 급증, 조선족 학생 부족에 의한 조선족 학교의 대량 철폐, 조선족 농민들의 대거 이농에 의한 민족 공유 경제기초의 약화 등으로 조선족자치지역 자체가 존속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제 조선족자치지역의 존속과 발전에는 조선족의 존망에 관계되는 사항으로 간주하여 접근해야 할 것이다.


3) 산재지역 조선족인의 민족정체성 수호 노력 

산재지역 조선족인들은 각종 ‘조선족협회’, ‘중국 조선족과학기술자협회’, ‘조선족노인협회’, ‘조선족여성협회’, ‘조선족기업인협회’, 그리고 ‘조선족주말학교’ 등을 통해 민족 언어와 문화를 전승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조치와 노력은 거의 전부가 조선족인들의 자발적인 노력에 의한 것으로서 향후 정부로부터의 민족정책적 지원을 받는 것이 필요된다.


이러한 노력이 산재지역 조선족인들의 이민족으로의 동화를 막을 수 있겠는지는 아직서뿔리 판단한 일이 아니지만 어느 정도 그 과정이 완만하게 진행되도록 하리라는 것은 의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사실상 수많은 산재지역 조선족인들은 ‘동화와 발전’의 관계에서 고민하고 있다. 때문에 산재지역 조선족 민족언어 및 전통문화 교육에 관한 정부 정책과 조치가 속히 마련된다면 산재지역 조선족 사회 및 지역 사회 전체의 발전에 유리할 것이다.                


4) 한반도로부터 중국에 유입되는 ‘한국인’

1992년 중한 수교 후 중국에 유입되는 한국인은 대폭 증가하여 2010년에 12만 명을 상회, 재중 외국인 중 가장 많게 되었다. 현재 정확한 통계 숫자는 모르지만 수십만 명에 달하리라 생각된다. 재중 한국인 중 일부는 이미 경제적으로 중국에 정착하는 성향을 보여주고 있고 중국에서 태어난 세대 중 일부는 한국어를 모른다. 수십 년이 지나면 그들 중 일부는 ‘중국 조선족’이 되리라 추측할 수도 있겠다. 


옛날 중국에 유입된 한반도 이주민과 비교하여 보면, 옛날에는 주로 동북지역으로 유입되었지만 현재는 이주민이 중국 연해지역 전체로 확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는 북한에서 중국으로의 정상적인 인구 유입이 거의 단절된 상태인데 언젠가 중국과 북한 사이 인구 유동이 자유로와지면 연변과 동북지역으로의 북한 조선인 유입도 증가할 것이다. 


세계적으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국가 중의 하나인 한반도 국가에서 중국으로 유입되는 한국인(조선인)은 지속적으로 전개되는 ‘유입-동화-재유입’ 과정에서 중국 조선족의 명맥 연장에 기여할 것이다. 


5) IT(정보기술)를 탄 공동체

100만-200만 명 정도밖에 안되는 중국 조선족이 960만km2나 되는 중국에서 독자적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방식은 개혁개방 전처럼 소수 지역에 모여 사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족의 분산화는 불가역적인 역사 과정이다. 향후 현존하는 집거지 조선족도 계속 분산화될 것이다. 조선족 집거지의 규모가 어느 정도 되어야 하나의 사회로 존속하겠는지는 아직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조선족 사회의 완전 해체 전까지 아마도 소규모의 조선족 집거지가 다수 병존할 것이다. 이와 동시에 더욱 많은 조선족 인구는 중국의 광활한 지역에서 이민족과 혼재해 살게 될 것이다. 


그러면 조선족 집거지 형식으로 존재하던 조선족 사회가 완전히 해체된 후에도 조선족 사회가 존속 가능할까? 그때에도 중국 조선족이 하나의 민족으로 존속할 수 있을까? 나는 상당히 오랜 기간 중에는 조선족 집거지가 없어지지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 하여도 기대를 담은 답안은 긍정적이다. 


인간사회의 형성 및 그 규모는 인구, 생산, 교통 및 통신에 의존한다. 현대 기술적 시각에서 상상할 수 있는 미래 조선족 사회의 유일한 존속 방식은 IT에 의한 민족공동체의 유지와 운영이다. 분산화가 추진될 수록 조선족 사회의 존속은 더욱 IT에 의존하게 된다. 현대사회는 개인 간의 교류에서 대면 대화보다 휴대폰이 더욱 일상적인 통신수단이 되었으며, 문화의 교류와 전파, 전승에서 온라인 방식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예를 들면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우리는 조선족 노래와 춤을 극장에 가서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임의로 선정한 공간 위치에서 위챗을 통해 듣고 본다. 전통문화와 민족언어의 전승과 발전은 관련 정보의 전달과 창조 과정으로서 IT에 의해 가능한 것이다. 심지어 많은 경우 IT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코로나19에 맞서 실행한 온라인 수업만이 아니라 호소절(滬蘇浙) 방방곡곡에 흩어져 있는 50여개 학급들을 관리하기 위하여 화동조선족주말학교는 오래전부터 IT가 있음으로써 그 운영이 가능하였다. 사실상 현재 호소절에 살고 있는 조선족 인구 수량과 분포를 본다면 만약 현대적 통신수단(휴대폰, 컴퓨터 등)이 없다면 이미 하나의 민족으로서의 강남지역 조선족의 존재, 또는 하나의 민족사회로서의 강남지역 조선족사회의 존재가 의심될 정도로 상호 연락과 교류가 극히 적은 상태에 처해 있을 것이다.     


물론 IT가 중요하다 하여 인간관계에서 모든 정보를 IT가 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면 대화는 그 어떤 IT로도 대체할 수 없는 정보전달 기능이 있다. 향후 IT가 아무리 발달한다 하여도 대면 대화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다. 따라서 대면 대화를 가능케 하는 교통수단도 필요되는 것이다. 그리고 일정한 규모의 인구는 조선족 사회의 구성과 존속에서 불가결의 제1 요소임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조선족이 없는 조선족 사회는 운운할 가치가 없다. 따라서 생산의 중요성은 더 말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8. 선택의 자유와 원칙

15세기 전에 우리민족은 자기의 언어를 기록하는 데에 필요한 제지술과 인쇄술은 갖고 있었으나 자기의 문자가 없었고, 20세기에 우리민족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우리말글을 사용할 권리를 박탈당한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현재 중국 조선족인들은 자녀들에게 우리말글을 가르쳐야 하는가 아니면 안 가르쳐도 괜찮은가 하는 데에서 여러가지 선택에 직면하여 있다. 다행히 학부모들은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고 모든 선택에는 나름대로 득과 실이 있다. 


학부모들의 선택은 자기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나어린 자녀들을 위한 선택이기 때문에 ‘우리 조선족의 미래를 위하여’ 등은 결코 선택 기준이 될 수 없다. 학부모들의 선택에 신중함이 절실히 필요되는 것은 이는 자기 자녀의 삶에 대한 책임감이 필요한 선택일 뿐만 아니라 자기 자녀의 소질에 대한 판단력, 그리고 사회와 민족 및 우리말글 향후 전망에 대한 예견성도 필요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화동조선족주말학교는 자녀들에게 우리말글을 가르쳐야 한다는 선택을 한 학부모들이 보내온 그들의 자녀들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어린이들의 우리학교 입학은 그들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들 부모들의 선택에 의한 것이다. 학부모들 선택에 대해서는 향후 그들 자녀들이 다 큰 후에야 이러저러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즉 돌이킬 수 없는 선택 결과에 대한 사후 평가에 불과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일단 학부모들이 현명한 선택을 하였다고 평가하고 싶다. ‘요컨대 자녀들을 조선족주말학교에 입학시킨 학부모들의 현명한 선택은 영원히 후회되지 않을 선택이다. 아울러 학부모들의 후회되지 않을 선택은 바로 자녀들의 원망하지 않을 운명이다. 현재 조선족 주말학교를 다니는 어린이들은 향후 부모님들의 오늘의 선택에 무한한 경의를 표할 것이다.’ 


여기에 나타난 주제어는 ‘선택, 후회, 경의’이고 숨겨있는 주제어는 ‘성공’이다. 


(2020-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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