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 관람 소감

    PROFESSOR COLUMN교수칼럼

영화 “기생충” 관람 소감

박창근 0 1,821 2020.03.16 16:49

2020 년 2 월 10 일 12 시 26 분, 나는 아래와 같은 소식을 위챗방에 띄워놓았다.

[한국 영화 ‘기생충’이 제 92 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감독상,더욱이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놀랍습니다! 대단합니다!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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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은 한국 100 년 영화사에서 가장 빛나는 성과를 자랑하고 있다.


[한국영화 역대 매출액 1 위를 달성했으며 한국 영화사 최초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두 번째 영국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각본상 수상작,비영어 영화 최초 SAG 미국 배우조합상 앙상블상, 그리고 제 92 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감독상, 각본상, 국제 영화상 수상의 위업을 달성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https://namu.wiki/w/기생충(영화),20200216

 

그런데 이 영화를 본 적지않은 사람들은 ‘왜 이 영화가 이렇게 유명한 상들을 수상할 수 있었는가?’에 대하여 의아해 하고 있다. 봉준호 감독도 작품상 수상 등은 완전히 뜻밖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예술성, 오락성 등은 크게 성공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봉준호 본인은 "이 영화는 악인이 없으면서도 비극이고, 광대가 없는데도 희극이다."라고 자평하였다. 엄숙한 주제을 다루었는데도 재미있게 봤다는 것은 많은 관객들의 평가이다. ‘봉테일’(봉준호+디테일’)이란 별명이 의미하는 것처럼 봉준호 감독의 꼼꼼함은 영화 ‘기생충’ 중 기택의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란 명대사가 봉준호 감독에게서는 ‘나는 다 계획이 있어’라고 바뀌게 된다는 데서 절실히 나타난다 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영화의 내용을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하는 것은 별로 수월하지 않은 것 같다.

여기에 영화를 전혀 모르는, 그리고 영화를 거의 보지 않는 관객의 신분에서 내가 느낀 바를 몇마디 적어놓는다.


1. 오랜만에 본 영화

나는 어려서부터 영화 보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6 남매 중 아마도 영화를 제일 적게 봤을 것이다. 나는 모든 사람의 삶이 영화와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여 영화 보기를 꺼렸던 것 같다. 나이가 많아짐에 따라 본 영화가 더욱 적어졌다. 이제는 ‘기생충’을 보기 전 제일 마지막으로 무슨 영화를 언제 봤던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작년에 ‘기생충’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을 때만 하여도 반드시 봐야 되겠다는 충동을 느끼지 못했다. 왜냐하면 빈부격차에 대한 담론은 너무나 흔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난2월10 일 아카데미 수상식에서 ‘기생충’이 오스카상 4 관왕이 되는 것을 보니 봐야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결국 1.5 번 보았다.


엄숙한 주제의 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는 데서 봉준호 감독의 성공을 크게 축하하고 싶다. 하지만 세계 제일의 영화로 평가 받아 전세계를 들썽케 하는 영화가 이렇게 간단한 이야기 줄거리에 출연 인물도 이렇게 적고 내용도 간단하여 한 번 보면 내용상에서는 더 보고 싶지 않을 정도여서 “아~, 이러면 세계영화 제일이 되는구나!”하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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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평가하면서 그 중요한 원인은 내가 영화를 모르기 때문이라 생각하기도 한다.술맛을 모르는 사람이 좋은 술을 마시고도 좋은 술인 줄 모르는 것과 같다. ‘둘째 며느리 맞아보아야 맏며느리 착한 줄 안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2. 세계 명작

한 영화가 높은 평가를 받으려면 예술적인 측면과 내용적인 측면에서 모두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기생충’을 전세계 영화인들이 높이 평가하는 것을 보면 그 예술성이 대단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랫그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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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내용상에서도 영화인들의 높은 평가를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보통관중이 그렇게 많다는 것은 내용상에서도 전세계적 범위에서 넓은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봉준호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려는 주제가 세계적인 범위에서 중요시되는 주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그것이 단순히 빈부격차의 폭로에 그치지 않고 ‘빈부격차+α’에서의 α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3. 봉준호 감독의 가정 배경

봉준호는 1969 년 대구광역시 한 지식인 가정에서 출생했다. 아버지 봉상균(1932-2017)은 영남대 미대 교수, 국립영화제작소 미술실장, 한국 1 세대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한국디자인트렌드학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어머니 박소영은 소설가 박태원의 둘째 딸이고, 형 봉준수는 서울대 영문과 교수이고, 누나 봉지희는 대학 교수로서 패션디자이너, 아내는 시나리오 작가 정선영, 아들 봉효민은 영화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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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외할아버지 박태원(1909-1986)은 유명한 소설가로서 1930 년대 대표적인 모더니스트 작가로 평가된다. 박태원은 6 ㆍ 25 전쟁 중 가족은 남에 남겨 놓고 홀로 월북하였는데 그의 북한에서의 생활을 설명하는 데는 대학 교수, 남노당 숙청, 강제노

동, 병환, 작가 등 용어가 사용된다. 그의 가장 유명한 소설은 1987 년에 완간한 <갑오농민전쟁>(3 부작)이다.


봉준호의 누나 봉지희에 의하면 어린 시절 봉준호는 '조용하고, 말수가 없었고, 느렸고, 공부는 굉장히 잘하고, 리더십도 있었지만, 특별히 끼가 있다거나 튀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는 다양한 책을 읽기 좋아하고 그림, 문학, 영화, 음악은 다 좋아했다 한다. 때문에 봉준호 감독은 영화 각본을 직접 쓸 뿐만 아니라 스토리보드도 직접 만든다고 한다. 봉준호 감독은 천재적인 영화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12 살 때부터 영화감독을 꿈꾼 봉준호 감독에 대하여 부모들은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보라고 격려하였다 한다. 그는 자신에 대한 아버지의 영향은 많았다고 인정하지만 북한에 간 외할아버지 박태원 작가의 영향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지 않는다.


봉준호 감독은 ‘민주노동당’ 당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정의당’ 당원은 아니라고 한다. 그의 정치 성향에 대한 논쟁이 있는 것 같지만 그가 ‘좌파 영화인’, ‘진보 영화인’ 인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때문에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에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한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은 ‘박찬욱 감독과 나는 그 블랙리스트에 올랐지만, 사실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4. 한국 사회의 빈부격차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을 통해 한국 사회의 빈부격차를 생동하게 보여주었다. 흔히 한국사회의 빈부격차는 1960 년대부터 1980 년대까지의 산업화 과정에서 형성되고 극단화된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양극화’란 말로 형용되는 것처럼 빈부격차가 대단히 큰 것 으로 평가된다.


세계적으로 볼 때 한국의 빈부격차는 ‘세계 제일’인가? 1960 년대부터 1980 년대 기간의 한국 산업화 과정을 살펴본다면 사실상 당시 한국 사회의 빈부격차는 세계상의 수많은 국가들과 비교하면 별로 크지 않았다고 평가된다. 세계상에는 현재도 한국보다 빈부격차가 훨씬 엄중한 국가들이 아주 많다. 세계상에는 한국의 부자들보다 더 부유한 부자들이 너무 많고, 또한 한국의 빈자들보다 더 빈궁한 빈자들이 너무 많다. 때문에 한국사회는 세계적으로 빈부격차가 가장 엄중한 사회로 평가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현재의 한국이 역사상의 한국보다 빈부격차가 더 큰 것도 아니라고 생각된다. 현재의 빈자들의 생활이 옛날 한국 농업사회의 머슴이나 ‘간도 소설’에 나오는 ‘간도 조선 농민들’보다 더 빈곤하다고 일괄적으로 말할 수는 없는 것 같다.(해방전 중국 조선족(인) 농민들의 빈곤상을 아는 지금의 젊은이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빈부격차가 과대 평가되는 원인 중에는 1980 년대 한국에 도입된 사이비 ‘사회주의이론’과 북한의 봉건적 사희주의 체제에 대한 ‘오해’ 및 한국 전통사회의 ‘평등의식’이 서로 결합되어 외국과의 구체적 비교가 결여된 상황에서 한국사회의 빈부격차를 정 피드백적으로 확대 해석한 측면도 있는 것 같다.

 

5. ‘전통 이론’에 대한 반발?

정치상에서 진보성향을 띤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에서 보여준 ‘견해’는 한국 다수 좌파 정치인들과는 일치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이전의 영화들에서 어떠한 가치관이나 입장을 보여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생충’을 통해서는 그가 여러 가지 “전통 이론”에 대하여 자기나름의 주장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 ‘부자=유능력자,빈자=무능력자’인가?

1960-1980 년대 한국 산업화 과정에서 시발점이 같았던 수많은 사람들이 분화되어 일부는 부자가 되고 일부는 빈자가 되었다. 결국 부자는 유능력자로, 빈자는 무능력자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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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기생충’에서 부자인 박 사장은 유능력자이겠지만 빈자들은 결코 무능력자가 아니다. 기택뿐만 아니라 충숙, 기우, 기정이는 무능력자가 아니다. 때문에 기택 일가의 빈곤은 능력 유무와는 상관없는 다른 모종 원인이 있어야 한다. 이는 부자가 되려면 능력만 있어서는 되는 것이 아니며,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다른 여건이 구비되지 않으면 부자가 될 수 없고 빈자가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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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택 일가 네 사람이 박 사장네 집에서 일을 하면서 그들은 자기의 능력을 발휘하게 되었고 그대로 나아간다면 어느 정도 재부도 축적하게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빈자로서의 사회적 지위를 어느 정도 높일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인간이 갖고 있는 능력 자체는 재부가 아니다. 그것이 재부로 전환하려면 일정한 여건이 구비되어야 한다. 혹시 여기서도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것이 답안이었을까.


2) ‘부자=부지런한 사람, 빈자=게으른 사람’인가?

한국 산업화 과정에서 형성된 또 하나의 철의 법칙은 ‘부지런하면 부자가 되고 게으르면 빈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 역동적인 30 년을 지나면서 한국인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가난함을 ‘남들이 열심히 일을 하여 부자가 될 때 당신을 뭘하였소?’라는 말로 비꼬았다. 도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현실 사회에서 부지런하면 반드시 부자가 될 수 있고 빈자는 모두 게을러서 빈자인가? ‘기생충’을 보면 박 사장이 부자가 된 것은 부지런히 일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기택 일가 4 인은 결코 게으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그들의 박 사장네 집에서의 노동 태도에서 알 수 있다. 그들은 자기가 맡은 일을 다 잘 하였다.


이는 근면함도 부자가 되는 하나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님을 보여준다. 그리고 빈자가 빈자인 것도 게을러서만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설명한다.


결국 ‘부자=유능력자, 빈자=무능력자’, ‘부자=부지런한 사람, 빈자=게으른 사람’이란 공식은 부자의 논리, 이른바 성공자의 논리임을 알 수 있다. ‘기생충’은 한국 사회에서 보편화된 적이 있던 이러한 논리의 보편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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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빈부격차의 존재는 알지만 그 원인은 알지 못한다. ‘기생충’도 그 원인은 밝혀주지 못하고 있다. ‘기생충’에 실려있는 이야기만 본다면 부자와 빈자는 순수한 우연성의 산물이다. 마치 윷놀이에서 어느 한 시각에 모가 나오냐 도가 나오냐가 완전히 우연적인 것처럼 한 인간은 오늘은 부자이지만 내일은 빈자가 될 수 있고, 오늘은 빈자이지만 내일은 부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모나 도가 나올 확률에 대한 토론도 있지만 한 개인을 놓고 말하면 모나 도가 나올 확률과 모나 도가 나올 시간 순서는 상관없기 때문에 각 순간에는 모든 가능성이 다 열려있다고 할 수 있다.


3) ‘부자=악인, 빈자=선인’인가?

부자와 빈자의 관계는 생활수준의 차이에 그치지 않고 도덕성과도 관련되게 묘사되어 흔히 ‘부자=악인, 빈자=선인’이란 등식으로 간소화된다. ‘흥부와 놀부’, ‘콩쥐와 팟쥐’ 등 이야기들이 보여주다싶이 한국사회에서 이러한 등식은 현대사회의 묘사에 국한되지 않고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결국 ‘양선징악’ 사상을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생충’은 한국 사회의 전통적인 선악론과 현대적인 선악론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 기택 일가는 모두 ‘사기꾼’이다. 기우의 ‘재학증명서’ 위조, 기정의 유학파 위장,기정의 팬티와 윤 기사의 해고, 문광의 폐병과 실직 등에서 기택 일가 4 인의 도덕성의 타락을 보여주며 3 가족 사이의 살인과 피살에서 빈자들의 사악함도 적라라하게 보여준다. 반대로 부자인 박 사장과 그의 아내 연교는 너무나 착하여 빈자들과의 ‘전쟁’에서 완전 무방비 상태이고 실패를 거듭한다. 그들은 자기가 누구에게 왜 패하는가도 잘 모른다. 기택은 호화 주택의 새 주인인 독일인도 ‘순진하다’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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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빈자, 그리고 양자 관계에 대한 이러한 설정은 그 어떤 전통 ‘좌파’ 이론의 지지도 받지 못한다. 오히려 전통 ‘좌파’ 이론에 대한 배반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기택이 박 사장네를 “부자인데도 착하다"고 하자 충숙은 "부자라서 착한 거다. 돈이 다리미라 성격 구김살을 펴준다. 나도 돈 많으면 착해질 거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자본을 만악의 근원으로 매도하는 전통 이론을 완전히 포기한 것이라 할 수밖에 없다.


4) 빈자와 더빈자, 빈자와 부자

‘기생충’에는 세 가족이 등장한다. 기택네와 근세네, 그리고 박 사장네이다. 빈자와 더 빈자, 그리고 부자이다. 전통 좌파 이론에 의하면 ‘빈자=착한 사람=피해자, 부자=악한 사람=가해자’이므로 빈자와 더빈자가 손을 잡고 부자와 싸우는 것이 도리이고 정의이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이 설계한 세 가족 간의 관계는 그렇지 않았다.

두 빈자 가족 사이의 관계는 그들과 부자 가족 사이의 관계보다 더욱 적대적이다. 원인은 간단하다. 두 빈자 가족은 부자 가족에 기생해야 살아갈 수 있는데 그들 중 한 가족만 ‘기생권’을 가진다. 때문에 두 빈자 가족 간의 관계는 적대관계, 즉 내가 죽지 않으려면 네가 죽어야 하는 관계이다. 결국은 빈자와 더빈자 사이의 참혹한 사살과 피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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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부자 박 사장도 피해자다. 기택이는 박 사장을 죽였다. 그러나 이는 직접적인 적대적 관계에 의한 살인이 아니다. 어느 정도의 심리적 대립에 의한 충동적 살인 행위, ‘계획 없는’ 살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기택이는 박 사장을 ‘언젠가는 제거하여야 할 계급의 원수’로 간주하고 죽인 것이 아니다. 박 사장의 ‘냄새에 대한 민감한 반응’으로 인한 부자에 대한 증오심이 축적된 것은 사실이지만 기택으로하여금 칼을 박 사장의 가슴에 박도록 한 것은 박 사장이 자동차 열쇠를 건네받는 과정에서 보인, 근세에 대한 극단적 혐오의 기색으로 인한 것이었다는 평가가 더 일반적이다.


5) 냄새와 선

한국인은 서양인보다 냄새에 민감하지 못하다. 서양인이 25 가지 냄새를 구분한다는데 한국인은 향, 전, 초, 성, 후 등 고작 5 가지 냄새를 구분한다는 기록이 있다. 그중 향을 제외한 네 가지는 모두 악취이다. 한국인이 ‘냄새가 난다’고 할 때는 ‘악취가 난다’는 뜻이다.

때문에 봉준호 감독이 ‘냄새’를 영화의 한 주제어로 사용한 것은 아주 흥미롭다. 처음은 다송이가 기택 가족 모두에게서 같은 냄새가 난다는 것을 발견하였고 박 사장도 기택에게서 나는 냄새를 여러 번 거론하였다. 이는 빈자가 목욕을 자주 하고 비누를 바꿔 쓰고 옷을 갈아 입는 등 방식으로 자기의 신분을 속이려 하여도 이미 체질화된 사회적 지위는 쉽게 감춰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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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에서 냄새는 부자와 빈자의 경계를 의미하는 ‘선’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박 사장을 포함하여 부자들은 아무리 ‘선’(善)하다 하여도 빈자가 ‘선’ (线)을 넘어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또는 허용하지 않는다. ‘기생충’에서 ‘선’을 넘으려는 모든 시도가 실패하게 됨을 볼 수 있다. 근세의 몸에서 나는 냄새에 저도 모르게 찌푸러진 박 사장의 얼굴은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직접적인 원인이기도 하였다.


6)수석(산수경석)

우선 사전의 해석을 보자.

‘수석(壽石):관상용의 자연석.’

‘산수경석(山水景石): 산, 골짜기, 폭포수 등 자연의 경치가 조화된 것 같은 모습을 갖춘 壽石(수석).’


기우는 친구 민혁한테서 산수경석을 가진 후 늘 그것을 갖고 다닌다. 그 돌덩이가 자기네 집에 재물과 운을 갖다 주리라고 믿는다. 결국은 비극으로 끝나지만 그 돌덩이는 한 동안 기택네에게 확실히 재물과 희망을 갖다 준 것처럼 보인다. 사실상 여기에는 한국의 다른 영화나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는 모종의 신비한 힘이 존재하며 그 힘에 의해 한 인간의 명운이 결정되는 것으로 안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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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봉준호 감독은 한국인 고유의 다신적 애니미즘을 자기의 영화에 도입하였다.일ㆍ월ㆍ산ㆍ천ㆍ수 등과 같은 무생물계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어 산수경석은 모든 가능성의 이유, 모든 우연성에 필연성(논리성)을 가미하는 근원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기생충’은 신과 현실의 관계에서 한국인은 마음속 어느 한 구석에 신을 품고 있지만 결코 신이 만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결국은 현실의 유혹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 사실상 현실을 더 중요시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서 봉준호 감독은 독창적이지 않다.봉준호 감독은 그 어떤 관념보다 현실을 더 중요시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6. 맺음말

나는 자기가 영화에 대한 평을, 특히 ‘기생충’과 같은 영화에 대한 평을 쓸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글을 쓴 것은 단순히 자기의 생각을 좀 정리해 보고싶어서이다. 쓰는 과정에서 ‘사고’(지난 수년간 수많은 일에 대해서는 ‘사고’의 기회가 없었다)의

재미가 되살아나는 기분도 있었지만 현재 나에게는 그런 기분을 향수할 겨를이 없다.


마지막으로 두 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첫째, ‘기생충’은 한국 사회, 나아가서는 인류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빈부격차, 신분차이 등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점을 폭로하였다는 데서는 성공적이었다. 거기에 예술적 재능을 가미하여 ‘세계 제일’의 영화로 평가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비참한 현실을 개변하고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에는 아무런 방안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무계획'이 가장 좋은 계획이다."라는 말이 이 영화의 결론으로 들린다.


둘째, ‘기생충’은 우리말 우리글의 세계적 영향력 확장에 큰 기여를 하였다는 것이다.한글을 쓰고 한국어로 말하는 한국인들이 출연한 영화가 ‘세계 제일’의 영광을 따냈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어를 사용한 문화상품이 ‘세계 제일’의 문화상품이 되었다는 것은 한국어가 이러한 ‘세계 제일’의 문화상품의 담체가 될 수 있음을 과시하여 한국어의 세계적 확산에 기여하게 되었다.

 

[원래는 방학기간에 완성하려던 글이 제대로 되지 않아 오늘에 이르렀다. 3 월 7 일 주말학교는 계획대로 개학하였다. 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 방식에 의한 개학 개강이었다.해야 할 일들이 많아 더는 글 쓸 수 없음을 고려하여 3 월 8일 초고를 마치고 여러 위챗방에 올려 놓았다. 토론을 좋아하고 사고를 향유할 수 있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참고의 가치가 있으면 다행이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어쩐지 불쾌한 심정이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원고를 수정하여 오늘 수정본을 내보낸다. 아직도 미흡한 점이 많지만 초고에 비해서는 고쳐진 곳이 적지 않다. 그리고 영화 장면도 여러 장 실어놓았다. 많은지적이 있기를 바란다. ------필자)

( 2020.3.8 초고, 3.16 수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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