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G33. 해마다ᆞ달마다ᆞ날마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우리가 반드시 달달 외워야 할 말 중에는 “계급투쟁은 반드시 해마다 말하고, 달마다 말하고, 날마다 말해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그 뜻은 “계급투쟁”은 해마다 한두 번 말하는데 그쳐서는 안되니 달마다 말해야 하고, 한 달에 한두 번 말하는데 그쳐서는 안되니 날마다 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루라도 말하지 않으면 “계급투쟁 의식”이 무디게 되기 때문이란다.
이제 “계급투쟁”은 해마다ᆞ달마다ᆞ날마다 말할 필요가 없어졌지만 그래도 해마다ᆞ달마다ᆞ날마다 해야 할 일은 일부 남아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언어 학습에서다. 해방 전에도 상하이에는 외국인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자녀들을 현지 학교에 보내야 하는 외국인 가족에서는 자녀들에 대한 모어 교육이 골칫거리였다. 성공한 가족에서는 보통 집안에서는 자녀들과 중국어는 절대 안 하고 모어만 하였다고 한다. 특히 자녀 교육에 관심 있는 세심한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학교에서 집에 돌아 올 때의 모어 수준이 당일 아침 집을 떠날 때보다 낮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한다. 원인은 하룻동안 학교에서 모어를 별로 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란다. 그렇다고 집에 와서 중국어를 하지 않은 애들이 중국어를 잘하지 못했다는 기록은 없은 것 같다.
“해마다ᆞ달마다ᆞ날마다”를 여기에 적고 보니 연변에 있을 때 한 가지 일이 생각난다. 한 조선족 학생이 공부를 잘하여 연변을 떠나 “안쪽”(당시 연변 외의 지역을 이렇게도 불렀다.)에 있는 명문대에 입학하였다. 그런데 대학 공부를 한 학기 하고 방학에 집에 돌아 온 그 “수재”가 친척 모임에서 조선말을 알아 듣지도, 할 줄도 모른다고 하여 난리가 일어났다. 지금 생각해 보니 한 학기 동안 우리말을 전혀 하지 않고 중국말만 하였겠으니 “대회” 발언을 하기가 좀 막막하였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 “수재”의 퍼포먼스가 좀 지나치기는 한 것 같다. 만약 그때에 조선족주말학교가 있어 그가 일주일에 한 번씩 “그느드르”, “아야어여”, “가나다라”를 읽을 기회가 있었더라면 그 정도는 안 되었을 걸......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우리 주말학교는 큰 타격을 받고 있다. 그래도 대부분은 온라인 수업으로 여전히 우리말글을 향수하고 있지만 소수 학급에서는 아직 온라인 수업도 시작하지 못했다. 이런 상태가 한 학기 정도 지속된다면 어떤 결과가 생길지 정말 근심스럽다. 그래도 “낭송낭독대회”가 있어 다행이다.
(20220414, 박창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