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줍기”란 뭘하는 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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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줍기”란 뭘하는 데죠

박창근 0 774 2022.05.18 22:05

MG0. “이삭줍기”란 뭘하는 데죠

 

박창근  복단대학 교수(정년 퇴임)/화동조선족주말학교장

 

 

인간은 보통 부모들한테서 모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하지만 체계적인 모어 학습은 학교를 다니면서부터다. 우리가 어릴 때는 대체로 이러하였다. 그러나 요새는 아니다. 조선족 산재지역에는 조선족 정규학교가 거의 없다. 조선족 어린이들은 거의 전부가 “우리말 벙어리”, “우리글 문맹”이 된다. 조선족주말학교가 대안으로 나타났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다. 그런데 조선족 집거지역 조선족 학교에서도 이제는 모두 한어로 수업을 한단다.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민족언어의 가장 든든한 거점인 조선족 가정에서도 우리말은 한어에 밀려 약 반수 조선족 가정의 부부간, 약 9할 이상 부모 자녀간 대화는 주로 한어로 한단다. 조선족인이 포함된 다문화가정에서 우리말은 통용언어가 되지 못한다. 다수 조선족 단체에서 통용 언어는 우리말이 아니라 한어다. 다수 조선족 위챗방은 우리말이 통용되지 않는다. 결국 언제 어디서나 우리말은 듣기 힘들고 우리글은 보기 어렵다. 한어 수준이 얼마나 제고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수 조선족 구성원의 우리말글 수준은 이제 평가하기 난감할 정도로 추락하고 있다.

 

호소절에서의 하나의 대안인 화동조선족주말학교를 보자. 초기는 초등반만 모집했지만 이제는 유아반, 성인반도 모집한다. 초기는 주말에만 수업했지만 이제는 평일 수업도 가능하다. 초기는 정규학교 개학기간에만 수업했지만 이제는 방학기간 수업도 가능하다. 수많은 교직원과 학부모들이 10년간 노력한 결과 상하이 본부에 8개 학구, 강소성에 6개 분교, 절강성에도 6개 분교가 있고, 학생수는 400명에 육박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무리 비정규학교라 하더라도 자녀가 주말학교를 다닐 있는 사람은 정도의 시간 할애 자유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수 조선족인은 그렇지 못하다. 학교 등 특수 직장을 제외한 대다수 직장의 직장인들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체계적으로 우리말글을 배운다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미 배운 우리말글 지식을 보존하고 새로운 우리말글 지식을 배우기 위해 대다수 조선족인들은 “이삭줍기”식 학습방식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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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절 각지에 퍼져 있는 화동조선족주말학교(2022-2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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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본부 학구들(6개 구 8개 학구)(2022-2학기)


내가 목격한 가장 전형적인 이삭줍기는 1960년대 3년 재해시기의 이삭줍기였다. 아사자가 적지않게 생겼던 당시 이삭줍기는 기아와 싸우는 수단 중의 하나였다. , , 수수, 옥수수, , 벼 등 식용 가능한 모든 것이 이삭줍기 대상이었다. 

 

우리 조선족인에게 지금 수요되는 것이 바로 우리말글 이삭줍기다. 잊혀진 우리말글 단어들을 주어와야 한다. 잊혀진 속담이나 명언들을 주어와야 한다. 옛날 배웠던 사투리나 방언에 대응되는 표준한국어 단어들을 주어와야 한다. 새로 도입된 신조어나 외래어도 부지런히 주어와야 한다. 그리고 산산이 흩어지는 전통문화의 알맹이들과 조각들도 완전히 소실되기 전에 주어와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의 우리말글 수준의 추락을 막아야 하고 가능하면 그 수준을 높여야 한다.   

 

이삭줍기 위챗방은 예전에 대지가 곡식 이삭줍기의 장이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말글 이삭줍기의 장이 되어야 한다. 모든 참가자는 다른 참가자에게 유익한 이삭이 되리라고 판단되는 우리말글을 위챗방에 올려놓고, 다른 참가자가 올린 우리말글 중 자기에게 유익한 이삭이라고 판단되는 부분을 복제하여 가면 된다. 올리는 것도 자유고 복제해 가는 것도 자유다. 정보(信息)의 무한한 복제 가능성은 이러한 작업을 가능케 한다.

 

우리말글 이삭은 하나의 자모, 하나의 단어, 하나의 문구일 수도 있고 한 수의 시, 한 편의 글, 한 권의 책일 수도 있다. 이삭이라고 올린 내용이 일부에게는 의미가 있지만 다른 일부에게는 무의미할 수도 있다. 자기에게 쓸모 없다고, 또는 자기에게 쓸모 있다고 자기의 의사를 타인에게 강요하지는 말아야 한다.

 

우리말글 이삭은 보는 사람에 따라 그냥 스쳐지날 수도 있고, 머리속에 새겨둘 수도 있고, 노트에 적어놓을 수도 있고, 컴퓨터에 저장할 수도 있다. 버릴 것은 버리고 남길 것은 남기고,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자기가 아는 것만 고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말글 이삭은 이삭줍기 위챗방에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게 된다. 마치 대지에 흩어져 있는 곡식 이삭처럼. 이들 무질서가 자기조직화하여 모종 질서를 형성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오랜 시일이 소요된다. 다수 참가자들은 그냥 자기에게 필요한 정보(信息)를 갖다 쓰면 될 것이다.

 

우리말글 이삭줍기 위챗방은 참가자 모두에 의해 운영된다. 그럼에도 우리말글의 전승을 사명으로 우리말글 교육에 종사하는 교수와 교사들이 앞장서서 이끌어야 하리라 생각한다. 이삭줍기 조선족 대중이 우리말글을 배우는 장이고 조선족 대중에게 우리말글을 보급하는 장이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민족어는 같은 언어임에도 한국의 한국어, 조선의 조선어, 중국 조선족의 조선어로 나뉘어 있고, 3자는 각기 표준한국어, 문화어, 규범조선어를 표준으로 한다. 총체적으로는 하나지만 세부적인 차이가 적지 않다. 3자의 역사, 사용인구, 세계적 영향력 등을 고려하여 화동조선족주말학교에서는 표준한국어를 가르친다. 한반도 밖에 있는 약 1500개 한글주말학교에서도 표준한국어를 가르친다. 중국내 대학교 조선어 학과 포함한 세계 각국에 있는 대학교 한국어학과에서도 거의 전부 표준한국어를 가르친다. 때문에 이삭줍기에서는 표준한국어 사용과 학습을 노력 방향으로 제창한다. 물론 규범조선어 문화어 사용이 거절되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이삭줍기에서 위법한 일이 발생하지 말기를 바라면서 이삭줍기 우리민족어의 보급과 호소절 조선족 사회의 발전에 어느 정도 기여하기를 바란다.

(2022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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