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G42. 잘 틀리는 발음 몇 가지
머리말
나는 한국어나 언어학이 전공이 아니다. 그러나 젊은 시절에 언어 공부 열정이 아주 높았다.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 한 가지 언어 공부에 하루 10여 시간이나 정신을 가다듬을 수 있을 정도였다. 예하면 1980년대에 독일어로 된 한 편의 논문을 중국어로 번역하기 위해 戴鸣钟 교수한테서 독일어를 한 달 반 배운 적이 있다. 그 성과가 아래의 번역문이다. 한자로 약 10,000자 정도다.
이렇게 “일반 시스템 이론”의 첫 번째 논문은 내가 독일어에서 중국어로 번역하게 되었다. 정말 미친듯이 공부한 결과였다. 그후 독일어를 계속 배울 시간이 없어 배우지 못하였고 이제는 전혀 모른다.
외국어를 배울 때 열정만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발음과 문법에 대해서는 세심하게 파고 들어가야 한다. 특히 독학으로 배울 때는 그러하다. 여기서는 내가 한국어 발음에 관련하여 관심 가졌었거나 현재도 관심 갖는 몇 가지 얘기를 나누어 보기로 한다.
[사람], [싸람], [차람]
복단대학 한국연구센터 초창기에 나는 “한국 공부”에 몰두하였기에 한국어 강의를 할 생각이 없었지만 “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칠 것을 요구하여 본과생ᆞ연구생들에게 선택 과목으로 한국어를 가르친 적이 있다.
제일 인상적인 것은 거의 모든 학생들(한족)이 “ㅅ”을 “ㅆ”이 아니면 “ㅊ”으로 발음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사람”을 “싸람”이 아니면 “차람”으로 발음하였다.
원인이 무엇일까? 우선은 그들이 나의 발음을 제대로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ㅅ”을 “ㅆ”이나 “ㅊ”으로 듣기 때문이다. 다음은 노력을 거쳐 제대로 들어도 발음이 제대로 안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발음을 시정하느라 몇 십번 연습했는지 모를 정도였다.
후에 주말학교를 운영하면서 조선족 어린이들이 “ㅅ”을 “ㅆ”이나 “ㅊ”으로 발음하지 않음을 보고 놀라웠다. 아마도 이 어린이들이 어느 정도의 우리말을 듣는 과정을 경과하였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청각이나 발음기관의 구조에 차이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2022 낭송ᆞ낭독 대회”에서 한 학생이 “사정”을 “싸정”이라 발음하는 것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학생이 “사람”을 어떻게 발음하는지 궁금하다.
“살을 어디서 살 수 있어요?”
모든 민족 구성원들은 자기의 민족어를 할 때에도 틀리게 발음하는 것이 있다. 주로는 방언 때문이다. 중국은 땅도 크고 사람도 많아 사용되는 언어가 70-80종이 된다. 그중의 하나가 한어인데 한어도 官话(표준어, 国语,正音이라고도 하는데 현재는 普通话) 외에 12개 방언이 있다. 그래서 각 소수민족이 자기의 민족어를 쓰고 한족인이 각기 방언을 쓸 경우 서로 소통이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예전에 상하이에서는 우리가 조선말을 할 때 그것을 복건어, 광동어로 착각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조선족이 하는 중국어를 듣고서 동북 한족인은 이 사람은 “조선족”이라고 판단하지만 상하이에서는 普通话를 잘 한다고 평가 받거나, 아니면 “복건인’, “광동인”, “강소인”, “절강인”, “홍콩인”, “싱가폴인”, “일본인”이라 평가되어도 별로 이상하지 않았다. 중국인들은 특정 방언 사용자나 소수 민족어 사용자에 대하여 차별시는 거의 없고 오히려 호기심이 앞선다.
사실상 한국인도 한국어를 틀리게 발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1995년 한국 이재돈 장군(저서 <지앙수와이(將帥)(상,하)>, 서울:도서출판 만파, 2001년)이 나의 소개로 복단대학에 와서 중국어 공부를 한 학기 한 적이 있다. 한 번은 그분이 나한테 “살을 어디서 살 수 있을까요?”라고 문의하였다. 나는 “살을 어떻게 사고 파는가?”, “혹시 고기를 사려 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였다. 한참 동안 묻고 답하고 하여 결국 그분이 “쌀”을 사려함을 알게 되었다. 부산 사람들은 “ㅆ”을 “ㅅ”으로 발음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산 사람들은 “ㅘ”도 흔히 틀리게 발음한단다. “ㅘ”를 “ㅏ”로 발음한다. 그래서 모 대통령은 “관광 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을 “간강 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하여 웃음거리를 남기기도 하였다. 그가 “강간 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했다는 것은 일부 호사가들의 말장난이었으리라 생각된다.
“물결”, “들짐승”, “날짐승”
모 대학 한국어학과 교수는 “물결”은 [물][껼]이라 읽어야 한다고 강의하면서 자기가 발음할 때는 [물결]이라 발음한다. 그는 “껼”이라는 발음을 내지 못하는 것은 아닌데 “물”과 “껼”을 함께 발음할 때는 [물껼]이라 하지 못한다. 이는 결코 듣기의 문제가 아니라 발음 기관의 문제라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일전에 <이삭줍기>에 실린 동영상을 통해 연변 두 어린이가 “날짐승”을 [날찜승]이 아니라 [날짐승]이라 읽고, “들짐승”을 [들ː찜승]이 아니라 [들ː짐승]이라 읽는 것을 들었다. 된소리로 읽어야 할 “찜”을 예사소리 “짐”으로 읽었던 것이다. 원인은 뭘까? 지도 교사가 잘못 가르쳤기 때문일까, 아니면 교사 지도가 전혀 없었기 때문일까.
중국 조선족인 중 집거지역에 사는 부분은 모어가 한국어(조선어)인 한국어(조선어) 원어민이다. 중국 조선족인과 재한 한국인과의 차이는 전자는 재외 원어민이고 후자는 재한 원어민이며, 전자는 북부 방언 사용자가 많고 후자는 남부 방언 사용자가 많으며, 전자는 중국 규범 조선어를 배우고 후자는 표준 한국어를 배운다는 것이다. 중국 대학 조선어학과 학생들을 포함한 전 세계 우리말 학습자들이 거의 전부 표준 한국어를 배우는 세월에 인구 100만밖에 안되는 중국 조선족인이 자기 규범의 조선어를 배운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작법이 아닐 수 없다. 일부 조선어 학자들에게는 수십년 연구 결과를 포기한다는 아쉬움이 남겠지만 중국 조선족의 미래를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여겨진다.
된소리를 내지 않고 발음한 “나무꾼”
2022 낭송ᆞ낭독 대회에서 한 어린이가 “선녀와 나무꾼”의 한 단락을 읽을 때 [나무군]이란 세 글자가 각별히 똑똑히 들렸다. 또한 아주 이상하게 들렸다. “나무꾼”이란 단어를 [나무ː군ː]이라고 읽는 것이었다.
그럼 왜 이 어린이는 [나무군]이라고 틀리게 읽었을까?
나는 이번 대회 자료집에서 세 명이 <선녀와 나무꾼>의 단락을 낭독했음을 확인했고, 모두가 제목은 <선녀와 나무꾼>이라 썼음도 확인하였다. 그러나 본문을 보니 두 명은 한국 출판 도서에서 인용했지만 한 명은 중국 출판 도서에서 인용했음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후자의 경우 본문에서는 모두 “나무군”이라 썼기 때문이다.
중국 조선어에서는 나무꾼을 “나무군”이라 쓰고 [나무꾼]이라 읽는다. 한국에서는 “나무꾼”이라 쓰고 [나무꾼]이라 읽는다. 그러므로 중국이나 한국에서 모두 [나무군]이란 발음은 틀린다. “나무꾼”이라고 썼을 경우 [나무군]이라 읽을 확율은 아주 낮지만 “나무군”이라고 썼을 경우 제대로 배우지 못하였으면 [나무군]이라 읽게 된다.
이번 낭송ᆞ낭독 대회에서는 된소리로 발음해야 할 것을 예사소리로 발음한 것이 적지 않았다. [나무군] 외에도 “사냥꾼”을 [사냥군]으로, “학구”를 [하구]로, “꽃도”를 [꼬도]로 읽는 것을 보면서 일부 학생들이 된소리를 내기 힘들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어나 영어 등 다른 언어와 달리 한국어에서는 예사소리와 된소리를 문자로도 구분한다. 한국어에 된소리는 “ㄲ, ㄸ, ㅃ, ㅆ, ㅉ”가 있는데 이들은 예사소리 “ㄱ, ㄷ, ㅂ, ㅅ, ㅈ”와 대응된다. 한국어 단어를 보면 된소리 나는 음절을 된소리로 표기하는 것도 있고, 표기는 예사소리로 하지만 발음은 된소리로 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적지 않은 밭침 뒤의 예사소리는 된소리로 발음된다. 된소리가 많은 것은 한국어의 한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된소리는 한국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사람들이 발음하기 힘들어 하는 내용 중의 하나다. 하지만 한국어를 모어로 배우는 사람들은 보통 된소리 발음을 어려워하지 않는다. 예전의 경험을 보면 호소절 지역 조선족 어린이들도 보통 된소리 발음을 제대로 한다. 관건은 교사들이 이에 대해 정확히 알고 각별히 주의하여 가르치는 것이다.
받침의 발음
한어나 일본어와의 비교에서 한국어의 가장 큰 특징의 하나는 한국어에 받침이 많다는 것이다. 한국어 학습에서 가장 힘든 내용의 하나가 받침이다. 그리고 받침 학습에서 받침 읽기도 힘들지만 더 힘든 것은 받침 쓰기이다. 이번 낭송ᆞ낭독 대회에서 “늑대”를 [느때], “학구”를 [하구], “꽃도”를 [꼬도]라고 발음하는 것이 발견되었다. 받침에 대한 얘기는 아마도 길어질 것 같아서 언젠가 다른 한 편의 글을 써 볼까 한다.
맺음말
화동조선족주말학교에서 주최하는 “2022 조선족 어린이 낭송ᆞ낭독대회”는 7번째다. 코로나 때문에 주변 분위기가 엉망이었지만 신청자ᆞ참가자 수는 역대 최다였다. 아직도 자녀에게 민족어를 가르치려는 학부모들의 많음에 깊이 감동 받았다. 하지만 내가 듣기에는 어린이들의 발음 수준이 예전보다 낮았다. 원인은 간단하다. 3년간의 코로나로 인해 어린이들이 우리말 수업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2022-1학기에 적지 않은 어린이들이 우리말 공부를 중단하였거나 우리말 공부 시간을 줄였고, 또한 수업도 온라인 방식으로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학기는 오프라인 수업이 가능하리라 기대해 본다. ㅁㅁㅁ
(20220706, 박창근)
(복사한 지면을 축소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있어 그대로 띄운다. 굳이 읽을 필요가 없는 내용이지만 읽어 보고 싶은 독자는 읽어도 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독일어 원문: "Zu einer allgemeinen Systemlehre"---지은이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