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전철학 복단대학 교수
자녀교육
누구나 인생은 한 번 뿐이고, 자녀 키우는 것도 한 번 뿐이라 자녀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애를 낳아 키우게 된다. 예전에는 애들이 많고, 밖에서 일하느라 바빠 애들한테 신경 못쓰고, 큰 애가 작은 애를 업어 키우는 것이 다반사였지만, 요즘은 대부분 애 하나둘 키우다 보니 엄청 신경쓴다.
우리는 내가 박사 졸업 직전인 2004년 11월에 애가 세상에 오게 됐다. 애 엄마는 집안을 따뜻하게 하고, 애가 눈부실까봐 낮에는 방에 커튼을 치고, 저녁에도 불을 어둡게 하고 지냈다. 그때 나는 학업이 끝나지 않아 주말 부부 상태라 아내 혼자서 애를 돌봤다. 어두운 방에서 온하루 애랑 혼자 있자니 아내도 우울해져 갔고, 애도 피부 여기저기에 반점이 생겼다. 안되겠다 싶어 집에 같이 있으면서 도와 줄 조선족 아주머니를 찾았다. 아주머니는 오자 마자 집이 너무 더워 애가 땀때가 난다면서 커튼도 거두고, 창문도 열어 통풍시켰다. 애한테 너무 신경 쓰다가 오히려 역작용이 난 것이다.
애가 입는 옷도 세탁기에 씻지 않고, 손빨래 해서 가마에 넣고 끓여 소독해서 말렸다. 그러나 요즘에는 오히려 애를 “더럽게” 키우라고 한다. 왜냐 하면, 어릴 때 “더러운” 환경에서 여러 종류의 미생물이나 화분과 같은 물질을 다 접촉하면서 인체에 면역력이 생기게 되는 데 이런 물질들을 어릴 때 접촉 못하면 나중에 접촉할 때 쉽게 감염되거나 알레르기 반응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농촌애들은 알레르기가 적고, 도시애들이 많은 것이다.
2005년에 중국으로 돌아 올 때 아내도 직장을 다녀야 했지만 부모님들이 와서 봐줄 형편이 안되는지라, 애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우리는 중계사무소에 가서 집에서 같이 살면서 애를 봐 줄 한족 아주머니를 찾았다. 아주머니가 와서 하루 이틀 후부터 애를 아주머니한테 맡기고 우리는 둘 다 직장에 갔다. 친구들은 이 얘기를 들으면 깜짝 놀란다. 요즘 어떤 세상인데 어떻게 믿고 맡기냐고. 그러다 집에 물건을 훔쳐 달아나면 어쩌고, 부모가 옆에 없을 때 애를 막 대하면 어쩌냐고? 아주머니가 채소를 사오는데 그때 야금야금 부풀려 계산하면 어쩌냐고? 솔직히 그때는 다른 방법이 없으니 아주머니를 믿고 맡길 수 밖에 없었고, 그만큼 아주머니를 잘 대해 줬다. 아주머니도 우리 집에서 기분 좋게 있어야 애를 잘 대해 줄 것 아닌가. 요즘에 수시로 흉흉한 뉴스가 나오지만, 그래도 대부분 사람은 착하다고 본다. 그리고 대부분은 자신을 믿고 인정해주면,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애가 자기와 같이 있는 시간이 더 많은 아주머니를 우리보다 더 따르니, 그것으로 우리 없을 때도 애한테 잘해주나 보다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요즘 부모들은 애 조기교육에 엄청 신경 쓴다. 소학교에 들어 가기 전에 벌써 더하기 덜기와 병음을 다 익히는 건 기본이고, 수영이나 피아노 같은 것도 배우게 할려고 한 달 생활비 절반 이상을 애한테 쏟는다. 친구집의 같은 또래애가 자기 애보다 더 많은 걸 배웠다면 인생 시발점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겠다고 더 많은 걸 배우게 하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자기 일이 바쁘다 보니 애한테 특별히 신경도 못썼다. 그러나 애가 책보기를 좋아 했는데, 아마 어릴 때 동화책을 본 것이 도움이 됐다고 본다. 어느 한 동화책을 아마 몇 십 번을 봤을 거다. 물론 자기가 글을 알아 읽은 것이 아니라 아주머니가 읽어주면 재미있다고 깔깔거리고, 하루 지나서 또 읽어달라고 조른다. 아마 그러면서 무의식적으로 언어의 감을 가지게 된게 아닐까 생각한다. 소학교에 입학할 때 대부분 애들은 병음을 다 익혔는데 우리는 안 가르쳐서 걱정했다. 학교에 들어간 후 처음에는 다른 애들보다 못한 것 같았지만 몇 달 지나니 그래도 다 따라 잡더라. 남보다 일찍 많은 것을 알면 좋지만,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요즘에는 지식을 너무 쉽게 배울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어떤 지식이 필요한 지를 알고, 얻은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그 지식을 응용하는 것이다.
소학교 때 우리도 애한테 밖의 학원에서 그림도 배우고, 피아노도 배우게 했다. 그림은 자기가 좋아했지만, 피아노는 싫어해 애 엄마가 억지로 계속 시켜보려고 노력하다가 결국 두 손 들었다. 애 말이 자기는 원래 피아노를 좋아했는데 규정된 시간에 같은 것을 계속 반복하게 하니 나중에는 피아노가 보기도 싫어졌다고 했다. 그러나 애 엄마는 그때 포기하지 말고, 좀더 시켜, 확실히 익히게 했으면, 나중에 자유자재로 피아노를 칠 수 있게 되어, 오히려 피아노를 다시 좋아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의견이 맞는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소학교 때 애는 글을 잘 써서 반주임인 어문 선생님한테서 항상 칭찬 받았다. 그러니 글 쓰는데 더 흥취가 생겨 더 열심히 글을 썼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어른이라도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비록 그것이 립서비스라는 걸 알더라도. 애와 선생님의 관계가 그 과목의 성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그래서 우리는 애가 집에 와 선생님의 흉을 보고, 때로는 우리 보기에도 선생님이 너무 과하게 얘기한 것이 있더라도 절대 애 앞에서 티를 내지 않았다. 선생님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이 애의 그 과목에 대한 흥취에 영향을 주니깐. 애 앞에서 항상 너희반 각 과목 선생님이 학년에서 제일 우수한 것 같다고, 구체적인 예를 들어 얘기해 주군 했다. 그것이 자기 애한테 도움이 되는 길이니깐.
복단대학 부속소학교는 공부를 많이 시키는 편이 아니다. 그리고 공부 난의도도 교재에 국한된다. 그래서 초중에 올라갔을 때 조금 걱정했다. 왜냐하면 초중에는 다른 소학교에서 진도를 훨씬 앞서 배워서 온 애들이 많으니깐. 처음에는 좀 어려워 했다. 대부분 학생들이 아는 내용이라 생각해 선생님이 교재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고, 바로 어려운 내용을 설명하기 시작하니 먼저 배우지 않은 우리 애는 따라가기 좀 힘들어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니 바로 적응해서 별로 문제가 없었다. 우리도 그전에 집 옆의 학원에 애를 보내 봤지만 내용이 쉬워 도움이 안돼 그만 뒀다. 그러나 중학교 2학년이 되니 애가 자기반 애들이 밖에서 퇀커(团课)를 한다면서 자기도 밖에서 배우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그때까지 학부모들이 모여 선생님을 초청해서 배우는 퇀커라는 것이 있는 지도 몰랐다. 비슷한 수준의 애들로 반을 만들고, 부모들이 수소문해서 잘하는 선생님을 찾으니 효과가 좋았다. 물론 비용은 밖의 일반 학원보다는 비쌌지만. 초중ㆍ고등학교 때 밖에서 배우는 것이 맞는지 아닌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애가 필요로 하는 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애 말을 들어보면 어떤 애들은 밖의 수업을 들으면서도 책상 밑에서 가만히 게임을 한단다. 애가 안하겠다는 걸 억지로 시켜서는 돈만 낭비할 뿐이지 효과는 없다.
우리는 부부간에 항상 조선어로 말하지만, 애는 어렸을 때부터 한족 보모 손에서 자랐으므로 조선어를 전혀 모른다. 그래서 박창근 교수님이 화동조선족주말학교(그때는 상하이조선족주말학교)를 조직한다니 바로 1기로 들어 가 한국어를 배웠다. 한두 해 동안 견지했지만 나중에 학교 숙제가 많아지니 결국 포기했다. 그 후로는 한국어를 배우지 않아 거의 완전히 까먹었다. 그런데 요즘 다시 자기절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조선어로 말하면 가끔 따라도 하고, 발음을 글자로 써보기도 한다. 그래서 한국어 교재를 다시 사 주었다. 소학교 저급 학년 때 심은 한국어의 씨앗이 이제야 다시 싹이 트기 시작한 것일가? 비록 선생님들이 흘린 땀방울이 흙에 뭍혀 보이지 않아도 어느 날인가 영양분이 되어 싹을 틔우는 것이다. 그것이 1년이 될지, 10년이 될지 아니면 더 긴 시간이 될지 몰라도… 그래서 교육은 백년 대계라 하나 보다.
이제 우리 애는 고등학교 3학년에 올라 가게 되는데 앞으로 어느 대학에 갈지, 어느 분야를 전공할지 고민이다. 친척들도 가끔 전화가 와서 어떤 학과가 좋냐고 물어 보지만 나는 나쁜 학과는 없다고 본다. 소위 좋은 학교, 좋은 학과일 수록 경쟁이 치열하고, 경쟁에서 뒤쳐지면 자신감이 없어진다. 그리고 지금은 직장 찾기 쉬운 학과라 해도 몇년 후에 어떻게 변할지는 누구도 모른다. 사람들이 관심없는 학과라도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면 오히려 더 많은 기회가 생긴다. 애 엄마는 애가 좀 더 노력해서 좋은 대학 좋은 학과에 가기 원하지만 나는 자신에게 적합한 수준의 대학의 자기가 좋아하는 학과로 가는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정답을 암송하는데 습관되어 왔다. 그래서 대학이나 대학원 입학 면접에서도 어떤 학생은 정답을 말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정답이 필요한 문제는 대부분 필기 시험에서 보았기에 면접에서는 학생 자신의 생각과 사고방식을 보려 한다. 정답을 말하려고 노력할 수록 오히려 면접 점수는 낮아진다. 대학 입시 원서의 자기소개서나 대학원 입학 면접에서, 학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자기가 어느 어느 활동에 참가했고 무엇 무엇도 할 줄 안다고 줄줄이 나열하는 것이다. 그러면 면접할 때 면접하는 사람은 그 학생이 쓴 내용을 바탕으로 더 구체적으로 그 활동에서 무엇을 느꼈고, 어떤 사고를 했는 지를 묻게 된다. 연구활동에 참여 했다면 구체적인 연구내용과 방법 및 그 원리를 묻게 된다. 그러면 그 때에 학생들이 활동에 참여하면서 얼마나 깊이 있게 사고 했는지를 알게 된다. 자기를 소개할 때, 자기가 진짜 깊이 있게 참여하고, 사고했던 몇 가지만 설명하는 것이 더 좋은 인상을 받을 수 있다. 요즘은 면접도 밖에서 지도해 주는 학원들이 있다. 그러나 평소에 학생 자신이 사고하는 습관이 되어 있지 않으면, 며칠 훈련한다고 면접을 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 직장 면접에서도 같은 논리라고 생각한다.
요즘 젊은 분들이 오히려 애한테 더욱 신경 쓰고, 인생을 애한테 투자하지만 그것이 꼭 애한테 좋은 것은 아니다. 애를 키우면서 그 행복을 즐기고, 애가 크면 자기 인생을 살도록 놓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애의 인생은 우리 인생이 아니다. 우리가 애의 인생 방향이나 진로를 정해줄 수 없고, 우리 보기에 좋은 것이 꼭 애한테 좋은 것이 아니다. 애의 인생은 자기절로 찾아 가야 하는 것이고, 우리는 다만 애가 자기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도움이 필요할 때 우리의 능력 범위에서 도와 줄 뿐이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인생살이
우리가 고등학교일 때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이고, 또 선생님들도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인생이 바뀌는 길이라고 말해줬다. 그래서 대학에 들어 왔을 때 새로운 목표를 세우기가 어려웠다. 그냥 공부 열심히 하는 것이 새로운 목표가 되었다. 우리는 1년간 육군사관학교에 가서 군사훈련을 하였는데 그 때 많은 학생들이 토플 단어책을 들고, 화장실에서도 암기하는 것을 보고, 나도 흉내내 보았지만 효과과 없었다. 대학 진학 전부터 외국에 나가 석박사공부를 하는 목표를 정하고 하나하나 준비하는 애와 그냥 영어 잘해야지 하면서 토플 책을 들고 보는 내가 같을 수 없다.
살면서 많은 경우 우리는 좌절을 맛본다.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만 하고 있으면 좌절을 모를거라 생각하지만 항상 좌절을 경험한다. 몇달 동안 열심히 쓴 연구비 신청이 떨어지고, 몇년의 실험결과를 종합해서 한단어 한단어를 확인하면서 쓴 논문이 저널 편집자에 의해 심사도 없이 바로 반송되고, 다시 다른 저널에 투고했는데 또 바로 반송 될 때에는 나도 좌절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좌절하게 되는 이유는 우리가 쉬운 목표를 세우지 않고 도전적인 목표를 세웠기 때문이다. 만약 당연히 도달할 수 있는 목표를 세웠다면 좌절은 없을 것이다. 좌절 앞에서 좌절하지 말라. 좌절을 경험한다는 것은 당신이 도전적이고 열성적인 사람이라는 증표다. 좌절을 딛고 일어섰을 때 당신은 더 높은 한 단계에 올라 서게 된다.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데 있어 중요한 것은 자신감이다. 자신감은 결국 자기가 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오고, 그 믿음은 자신의 경험에서 온다. 아무리 많은 실패를 했더라도, 작은 승리 하나가 큰 힘이 되는 이유다. 나는 대학교 때 학업에서 항상 반에서 하류에 속했지만, 수학 하나만은 반에서 상류에 속해, 이것이 나도 바보는 아니다 라고 자신을 격려하는 큰 버팀목이 되었다. 그래서 진짜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 하나쯤 있는 것이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어떤 분야의 재능이던.
요즘은 글로벌화가 되어, 모든 분야에서 협력이 중요하다. 요즘은 여러 전공 분야가 혐업해서 하는 연구가 점점 많아진다. 복단대학 교장으로 있는 金力원사의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 연구는 유전학자들이 언어학자, 역사학자 및 고고학자와 함께 진행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 많은 대학교에서 1,2학년 때 전공분야를 세분화하지 않고, 通识교육을 하고 있다. 혐업을 잘 하려면 다른 분야 사람들과 소통을 해야 하고, 그럴려면 그 분야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혐업에 있어서 더 중요한 것은 밑지는 법을 아는 것이다.
살면서 가장 행복할 때가 뭔가 생각해보니 상대방으로부터 인정받을 때다. 사람들은 능력이나 성과가 좋아 인정해주는것이 아니다. 능력이 좋으면 부러워하고, 성과가 좋으면 그 사람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고 질투하게 되지 상대방 자체를 인정해주지는 않는다. 평소에 사소한 일에서 바보같이 좀 밑지면, 다른 사람들은 점차 그 사람 자체, 즉 그 사람의 인격에 대해 인정해 주게 된다. 인간관계에서 사람들은 똑똑한 사람보다 밑질 줄 아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 이런 사람과 같이 있으면 경계할 필요가 없고, 도움을 받을 수도 있으니깐. 물론 모든 일에서 다 양보하라는 것은 아니다. 자신에게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에서는 쟁취해야 한다. 항상 양보하던 사람이 어떤 일에서 양보 안한다고 사람들은 뭐라 하지 않을 것이다. 한 사람의 인격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결국 매일의 삶의 반복에서 습관이 되고, 그 습관이 인격으로 굳어지게 된다. 가장 큰 인정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받는 인정이다. 그래서 그것이 더 힘들고, 더 갚어치가 있는 것이다.
예전에 강의하면서 학생들에게 목표를 갖고, 열심히 노력하고, 세계수준의 학술성과를 배워야 앞으로 그 수준의 연구를 할 수 있을 거 아니냐고 얘기했더니, 한 학생이 왜 꼭 그런 연구를 해야 하냐고, 왜 그렇게 살아야 하냐고 한다. 우리 애도 너무 열심히 하는 사람들 때문에 이 사회에 경쟁이 더 심해지고, 노동력 수요가 줄어들고, 실직자가 늘어나고 전체 사회 생활의 질이 떨어지게 된다고 쟁론한다. 어떻게 보면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인생에는 정답은 없다. 자기만의 답을 찾아 거기에 맞게 살아가면 되나 보다.
(20220725)
전철학 (全哲学)
---복단대학 생명과학과 교수, 교육부 신세기 우수 인재.
---1992년 연변일중 졸업, 1997년 북경대학 화학과 졸업, 1997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가 석사와 박사학위 취득, 2005년에 복단대학에 강사로 와서 2011년 정교수로 임명됨.
---국외 SCI 저널 PLoS ONE, Journal of Microbiology, Frontiers in Microbiology의 편집위원.
---현재까지 제1저자 혹은 통신저자로서 40여 편의 논문을 SCI 저널에 발표, 새로운 강(纲, Class) 하나, 속 (属, Genus) 다섯 가지, 및 종(种, Species) 스무 가지를 발견하여 명명(命名)함.
[이 글은 복단대학 전철학 교수가 지난 8월 6일 제14회 화동조선족주말학교 교사 연수회에서 한 특강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