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의 일생

백조의 일생

운영자 0 731 2023.03.27 04:11

백조의 일생

박명호 지음

 

[1990년대 초라고 기억된다. 한국 연강학술재단에서 보내온 책들 중에 <백조의 일생>이란 책이 있었다. 당시 여러 번 재판한 시집이다. 나는 이때까지 읽어보지 않아 거기에 뭐가 실려 있는지 몰랐다. 금방 책장에서 뽑아보니 모두 133수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어느 것을 읽어볼까 하다가 시집 제목으로 한 백조의 일생 읽어보고 여러 분과 공유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여기에 옮긴다.]

 

 

백조는 오직 새끼 위해 알을 품다가

젊은 날의 앞가슴 예쁜 털도 빠져 버렸고

벡조는 이제 갓난 새끼들 위해 멀리 고기를 잡으러 떠났다네

그러나 그물도 낚시도 없이 입으로만 고기를 어떻게 잡나

온갖 기울여 간신히 고기를 하나 잡으니 먹음직도 하구나

오랫동안 굶주리고 지친 엄마의 창자, 고기가 먹고 싶어 군침이 나오지만

집에 두고 새끼들 생각에 엄마는 그냥 가지고 집에 돌아 온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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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들만 먹이고 자기 제대로 채우지 못한 엄마 백조

이렇게 여러 동안 새끼를 키우고 나니

엄마 백조는 마를 대로 마르고 쇠약할 대로 쇠약해져 버렸다네

그러기를 , 두 배, 세 배 새끼를 차례로 키우고 나니

엄마 백조는 기진맥진 만신창이가 되어 버렸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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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 오기 전에 수만 남쪽 나라 옮겨가 살아야 하는데

엄마 백조는 힘이 없고 어지러워 수가 없다네

엄마 백조는 새끼들 모아 놓고 상냥하게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작별하기를

“얘들아, 엄마는 이곳에 남아 혼자 살 테니 너희들은 저 따뜻한 남쪽 나라에 가서 형제끼리 싸우지 말고 서로 사랑하며 오래 오래 행복하게 잘들 살려무나 거듭거듭 타일렀다네

 

새끼들 떠나 보낸 엄마 백조는 며칠 남지 못한 자기 생명 위하여

찬서리 홀로 맞으며 연못가 논두렁 힘없이 끼웃거리며 먹이를 찾다가

아무도 모르는 언덕 밑에서 마지막 새끼들 잘되기만을 오직

빌고 빌면서 조용히 고개를 떨구고 숨을 거두었다오

 

그러나 새끼들은 뒤에 남은 엄마는 생각지도 아니하고

저희끼리 깔깔대고 웃으면서 노래하고 춤추며

자기들만의 행복을 찾아서 멀리멀리

남쪽 나라로 모두들 날아가 버렸다네

뒤에 남은 엄마는 이미 숨진 것도 모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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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고 앉아 있는 엄마 백조는 평생을 자식 위해 먹지 못한 텅빈

그러나 가슴은 자식 위한 사랑 한아름  가득히 안고서

만족한 미소 짓고 앉아 있는 거룩한 백조 엄마의 모습이여,

이것이 아름답고 아름다운 백조 천사의 거룩한 일생이라오

 

출처: 박명호. 백조의 일생, 석국, 1987년. 195-197쪽. 

 (20230327, 옮긴이 박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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