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열의 사나이를 만나본다
ㅡ민영기업가 리동춘 회장의 이야기
글쓴이 신기덕
들어가는 말
‘된장술酱露酒’과의 접촉은 이미 10여년이 된다. 술상에서 처음 된장술을 접촉할 때에는 그냥 ‘어떤 분이 된장으로 술을 만들었네. 참으로 기발한 발상(착상)이야…’ 하는 조금 놀라운 생각이 갈마들었었다. 몇년 전에는 또 ‘썩장술纳豆酒’이 력사의 무대에 등장하여 사람들의 눈길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썩장’이란 ‘청국장’의 함경도방언이다. 미안하지만 어릴 적부터 ‘썩장’이란 이름을 사용했기에 이 글에서도 ‘썩장’으로 적었음을 특히 설명해두는 바이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지금은 된장으로 만든 술들이 이미 고급, 중급, 대중, 선물, 수출, 기능성 제품으로 자기의 당당한 계렬을 이루고 있다.
사실 나는 술상에 앉는 차수가 많지만 술맛을 잘 모른다. 그리고 술에 대한 연구도 없다. 헌데 술맛을 좀 아는 친구들이 자주 된장술이나 썩장술을 찾는 걸 보아서는 이 술들이 확실히 좋기는 한 모양이다. 1월 12일에 된장으로 술을 만들어낸 이름 높은 조선족 민영기업가 리동춘 회장을 만나게 되였고 함께 된장국을 안주로 된장술을 마시게 되였다. 그 후 10여일이란 시간을 들여 그와 관련된 글들을 읽게 되였다. 그가 쓴 24만자에 달하는 자서전적인 책 ≪된장아리랑≫과 그의 사적을 쓴 많은 글들을 보면서 실로 많은 감수를 받게 되였다.
하여 오늘 나도 이 민영기업가를 내 나름 대로 글에 담아보려고 한다. 이틀 전이 음력설이였다. 이전에 가난했던 시기에는 음력설음식을 차리기가 비교적 간단하였다. 그저 맛이 있는 좋은 음식을 차리면 되였다. 하지만 생활이 많이 향상된 지금이 설음식을 차리기가 더 힘들다. 먹을거리가 너무 많아 선택의 곤혹을 겪어야 하니깐. 리동춘 회장의 글을 쓰자니 마찬가지로 좋은 자료가 너무 많아 ‘글감을 어떻게 선택해야 하나?’, ‘어떻게 써야 하나?’ 하는 아름다운 고민을 하게 된다. 한가지만은 명확하다. 많은 기자나 작가들이 그의 기업과 상품에 대해 품을 들여 썼다면 나는 리동춘이란 이 인물의 이야기에 대해서만 중점적으로 쓰고 싶다.
위챗 • 인연
리동춘 회장이 위챗 프로필에 올린 이름이 ‘오덕인생悟德人生’이다. 위챗친구로 되기 전에 우리는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였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들의 념원과는 상관이 없이 두루 같은 위챗그룹에 들어있다 보니 서로가 올리는 글을 읽을 수가 있었다. 나는 인생과 관련된 짧은 글들과 내가 쓴 글만을 올리고 리동춘 회장은 자기 회사와 관련된 자료만을 자주 올리는데 간혹 문학작품과 잘된 기사들도 올렸었다. 그가 올린 한편의 글은 지금도 가슴에 똑똑하게 남아있다.
그 기사의 제목은 ≪伟大的放弃!泪目≫였다. 이란伊朗에서 있은 사실을 기자가 글과 사진을 곁들여 만들어 올렸는데 올리자마자 세계를 놀래웠고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자아냈다. 그 기사의 내용을 요약하면 대개 이러하다. 이란 북부의 어느 한 마을에 살던 26세에 난 청년이 무슨 일로 다투다가 17세에 난 청년을 죽이게 된다. 하여 그는 붙잡히게 되고 결국 법에 의해 교수형绞刑을 받게 된다. 그 청년은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린 채 울며불며 교수대에 오르게 된다. 억장이 무너진 그의 어머니도 울다가 까물어치기에 이른다.
이제 범죄자의 발 밑에 놓여진 걸상을 빼내기만 하면 그는 곧 죽게 된다. 그리고 그를 가엾이 여기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바로 이때 피해자의 부모가 나타나 범죄자의 앞으로 다가가서 피해자의 엄마가 범죄자의 뺨을 한대 때리고는 그를 용서해주고 그의 목에 매여져있는 바줄을 풀어준다. 그러면서 피해자 어머니가 하는 말이 가슴을 울린다.
“내가 아들을 잃은 아픔을 겪었기에 다른 어머니에게 더 이상 그런 아픔을 겪게 하고 싶지 않다.”
모성애는 위대하면서도 거룩하다. 이런 위대한 모성애로 하여 그 범죄자의 운명은 완전히 바뀌였을 것이다.
바로 이 기사를 읽고 나는 이 ‘오덕인생’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되고 마침내 내가 알고 있는 강동춘 기자에게 그를 소개해줄 것을 부탁하기에 이른다. 그때가 2021년 3월 28일이였다.
유명한 잡지 • 유명한 인물
위챗친구로 된 후에도 우리는 별로 련락이 없다가 금년도 1월 5일에 그가 위챗 모멘트朋友圈에 ≪오늘의 중국今日中国≫ 잡지의 앞표지封面를 올려서부터 나의 주의를 확 끌게 되였다. 그는 ≪오늘의 중국≫잡지 앞표지를 위챗 모멘트에 올리고 다음과 같은 글귀를 올렸었다. “이 잡지는 국가급 간행물 ≪오늘의 중국≫입니다. 연변의 저명한 소설가 우뢰于雷선생이 쓴 장편 보고문학 <된장왕酱王에서 술신선酒神으로>가 이 잡지에 실렸습니다. 비록 글의 주인공은 저이지만 연변오덕된장술유한회사의 발전에 영향이 더 클 것으로…”
아쉬운 것은 잡지의 앞표지만 있고 글이 없었다. ≪오늘의 중국≫ 잡지는 한어로 발행되는 외에도 영어, 프랑스어, 에스빠냐어, 뽀루뚜갈어, 아랍어, 토이기어 등 언어로 미국 등 여러개 나라에 발행되는 영향력이 큰 국가급 간행물이다. 나도 핵심간행물核心刊物과 중요간행물重要刊物에 글 몇편을 발표하여 좀 알고 있는데 이런 영향력이 큰 국가급 간행물에 글을 발표한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과장이기는 하지만 ‘하늘의 별 따기’라는 표현이 여기에 알맞다고 해야겠다. 우리 조선족의 사적이 이렇게 중요한 잡지에 실리다니… 너무도 기쁘고 놀라운 일이였다.
나는 잡지의 글을 읽고 싶은 유혹을 못이겨 리동춘 회장에게 잡지에 발표된 글을 보내줄 수 없겠는가 하는 좀 과분한 요구를 제기하게 되였고 리동춘 회장은 며칠 후에 그 글을 사진을 찍어 보내오게 되였다. 나는 글이 오자마자 읽기 시작했는데 그 내용이 저그만치 18페지나 되였다. 그 잡지에 실린 다른 글들은 대부분 짧았고 제일 길어야 6페지였다.
이런 국가급 간행물에 18페지나 차지하는 긴 보도글을 발표했다는 것 자체도 불가사의에 가까운 일이고 이 사실은 또 단적으로 이 글의 내용이 얼마나 충실한가를 말해주고 있었다. 말 그대로 유명한 잡지에 실린 유명한 인물이라 표현함이 알맞을 것이다. 후에야 알게 된 바이지만 위챗 모멘트를 통해 ≪오늘의 중국≫잡지의 표지를 보고 하트를 남긴 사람은 백명이 넘지만 그 글의 내용을 요구한 사람은 나 한사람이 뿐이였다고 한다. 하여 리동춘 회장도 한번 만나보고 싶던 차 우리의 만남은 극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ㅁㅁㅁ
신기덕:
1959년 용정현 출생. 통화시 조선족 중학교 및 연변제1중학교 교원, 길림성교육학원 민족교육부에서 교수 역임. 연변작가협회 회원, 중국조선어문 교수연구회 비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