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화동주말학교 교수연수회에서 전학철 교수님은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는 발언을 하셨다. 너무 동감이 가는 명언이시다. 인생에는 영향주는 요소가 너무 많기에 정답 찾기 힘들다. 싸움하지 않고 사는 부부가 없듯이. 1+1=2가 성립되지 않을 때도 있듯이. 1근+1근= 2킬로그램이 아닐 수도 있듯이. 아버지+어머니=아버지+어머니 +아이가 아닐 수도 있듯이.
고중에 붙었다 해서 다 대학 가는 것도 아니고, 대학을 졸업했다 해서 다 제 전공을 써먹는 법도 없다. 그러나 언어 한 가지를 더 배워 두면 일자리 찾는 길이 넓어진다. 이것이 우리말, 우리글을 배워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 가정을 예로 들어 우리말, 우리글을 배워야 하는 이유를 말하려 한다.
남편은 대학시험에서 청화대학 점수선을 초과했으나, 절강대학에 입학하여 열처리 전업을 배우고 당시 전국에서 세 번째로 큰 길림화학공업회사(吉化公司)에 분배받았었다. 그런데 10년 후 이 회사가 내리막길을 걷더니 결국 홍콩 기업가에게 팔렸다. 그러자 회사에서는 대량 감원을 시작했다. 그때 마침 상해에 있는 절강대학 조선족 학우가 텔리비전 형광판회사에서 조선족 번역을 찾는데 상해에 나올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남편은 흔쾌히 대답했고, 상해에 온 것이 면접 성공하였다. 남편은 그 회사에서 중국어, 한국어, 일어 삼국어 통역을 하면서 경리를 따라 한국, 일본으로 출장을 다니며 인생의 멋진 한 페이지를 남겼다. 그리고 그 회사에서 우리집 호구도 해결해 주어 세 식구가 모두 상해 호구로 되었다. 이것은 남편이 우리말 덕을 본 것이다.
나는 중국어와 일어를 영 못했다. 소학교부터 고중까지 조선족학교를 다녔고, 대학은 연변대학을 다녔으니 중국말이 약했다. 게다가 조선족중학교에서 교사노릇을 하다 보니 중국어는 더욱 안되었다. 그래서 상해 와서 찾은 직업이 한국 유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였다. 역시 한국어를 알았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후에 아시아에서 제일 큰 사립학교인 광동벽계원국제학교 입사해 외국 유학생을 가르쳤다. 이 역시 유학생들 중 거의 절반이 한국 유학생이여서, 학교에 꼭 조선족 교사를 두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역시 우리말, 우리글 덕분에 대학에서 배운 전공과 관계없이 수학을 가르치며 높은 봉급을 받았다.
한 번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인생에 정답이 없듯이 교수에도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과거 내가 광동벽계원국제학교에서 교사로 일할 때였다. 이 학교의 외국 유학생들은 여러 나라에서 왔으므로 기초가 다르고, 과거 배운 교재가 달랐을 뿐만 아니라, 나이도 달랐다. 그리하여 학생들의 성적이 천차만별이었다. 그래서 어떤 반은 학생 5명에게 다섯 가지 다른 교과서를 사용해야 하였다. 그에 따라 수업준비도 다섯 가지로 해야 했으며, 시험지도 다섯 가지로 만들어야 했다. 이런 교수방법을 간단히 비동기교수법(异步教学方法)라고 한다. 많이 힘든 교수방법이지만 머리를 짜면 해결책이 생긴다.
다음은 우리 딸 얘기를 좀 하려 한다. 길림시에서 조선족소학교를 3학년까지 다니고 우리가 상해로 이사오면서 한족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대학에서는 여행업을 전공하고 졸업 후 글로벌센터(环球中心)에서 관광객 안내 일을 했었는데,조선어는 기본상 잊은 상태였다.
내가 주말학교에서 교수하게 되면서 딸을 성인반에 넣고 한학기 가르쳤더니 옛날 배운 기초가 있어서 다른 학생들보다 빨리 배웠고, 학생들의 낭송낭독대회에도 참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체로 한국 드라마를 많이 보고 하니 입을 열고 우리말을 하기 시작했다.
(2022년 8월 8일, 전영실)
배웠던 전공 지식은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배워놓은 언어 지식은 그 언젠가 쓸모 있는가 봅니다.
배울 때 안 배우면 필요할 때는 후회막급, 아무때나 배워두면 필요할 때는 득심응수.